삭제

by 윤부파파

아내가 큰 맘먹고 사준 액션캠. 수학여행 가서 브이로그 영상도 만들어볼 겸 열심히 영상을 남겼다. 기대하지 않던 학생들의 춤사위까지 담겨 있어, 편집을 어떻게 해야 하나 벌써 걱정이 될 정도 였다.

일요일 오후, 아이들과 체육공원에 나가 축구를 했다. 날씨도 화창하고 바람도 시원했다. 넓은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뛰어 노는 모습도 찍고, 첫째와 캐치볼을 하는 장면은 둘째가 직접 카메라를 들어 찍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잠시 후 둘째가 와서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다 삭제했어..."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둘째의 말에 너무 당황해 화 조차 내지 못했다.

"거기에 형아들 영상 다 있는데...", "어떡하지, 어떡해..."

열심히 핸드폰으로 복구 관련 글을 검색하고 있는데 둘째가 보이지 않았다. 차량 뒷자리에서 울고 있던 둘째.

아빠를 보더니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가 미안해, 윤제보다 더 소중한 건 없어. 많이 놀랬지?"

한참을 차 안에서 울던 아이는 10분쯤 지나서야 나왔다. 그러고는 곧 기운을 차리고 형이랑 재미있게 축구를 했다. 교회 축구팀 수업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역시 아이들은 아픈 것들도 금세 훌훌 털어버리고 천진난만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

그러던 중 쉬는시간에 둘째가 갑자기 나에게 와서 귓속말로 말했다.

"아빠, 미안해"

다 잊고 신나게 노는 줄만 알았는데 마음속으로 미안한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었나 보다. 그 천진난만한 얼굴 뒤에 아빠에게 미안함을 감추고 있었다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팠다.

'아빠가 미안해.' 얘기해주지 못했다.

다음날 학교에 와서 이것저것 시도해봤지만, 복구된 영상은 끊기고 절반 이상 날아간 상태였다. 복구 업체는나의 기준으로 천문학적인 비용을 불렀고, 결국 영상은 영원히 잃어버린 채로 남게 되었다.

그날 저녁 둘째가 나에게로 와 말했다.

"아빠 미안한데,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

비록 영상들은 삭제됐지만 둘째의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미리미리 백업해 놓지 않은 아빠 잘못이지. 네 잘못은 없어.'

오늘 밤, 꼭 그렇게 말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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