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출발 전부터 지쳐버린 우리들
저렴한 찜질방에서의 저렴한 수면
10월 3일 고흥 녹동에서 제주항으로의 배편을 예약했다. 그러고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하루 전에 출발할지, 당일 새벽에 출발할지를 말이다. 새벽에 가게 되면 오후에 자전거 타는 데 지장이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전날 출발해 고흥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여객터미널 근처에 저렴한 숙소를 알아보고 예약을 하려 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최대한 숙박비를 아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알아본 것이 찜질방이었다. 근처에 찜질방이 하나 있었고, 직장 동료가 올여름에 우리와 같이 고흥에서 배를 타고 제주에 갔는데 그 찜질방을 이용했다고 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사장님도 친절하다고 해 우리도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코로나 시대에 태어나 자란 우리 아이들은 대중목욕탕에도 가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렇기에 찜질방을 경험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나도 10여 년 전에 찜질방에 갔던 좋은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5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저녁을 먹기 위해 도시락도 준비했다. 전남 고흥은 경북 구미에서 정말 멀었다. 2시간쯤 달렸을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휴게소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졌다. 내 걱정도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저녁 9시가 되어 찜질방에 도착했다. 건물은 날았지만 듣던 데로 사장님은 친절했다. 저녁이라 목욕탕에 아무도 없어 아이들은 신나게 물놀이를 했다. 아이들은 이것만으로도 즐거워했다. 이제 찜질방에서 식혜에 계란도 먹고, 여러 찜질방 탐방도 다닐 생각에 기대에 차 올라갔다.
하지만 TV를 보는 아저씨 한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살금살금 찜질방 탐방에 나섰다. 황토방에도 가보고 정말 뜨거운 방에는 문만 열어도 그 열기만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아주 시원한 아이스방에도 들어가 봤다. 아이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이곳저곳을 누비고 싶었지만 자는 사람이 많았기에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예전에 라면이나 식혜, 계란을 팔던 매점도 없어지고 자판기로 대체되어 있었다.
내일 비소식에 자꾸만 일기예보를 확인했다. 낯선 곳이라서 새벽 내내 잠을 설쳤다. 아내도 아침이 되어 깊은 잠을 못 이룬 듯 보였다. 나는 잠을 못 자 피곤한 데다 어제보다 늘어난 강수량에 수심이 더 깊어만 갔다. 그래도 아이들은 찜질방에서 개운하게 잘 잔 듯 보였고, 아침에도 목욕탕에 가서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
차라리 돈을 더 주고 편안하게 잤으면 어땠을까 후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도 좋아했고, 아내도 힘들어 하긴 했지만 여탕에서 정말 많은 전라도 할머니들의 사투리를 들으며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그나저나 비가 많이 와서 배는 뜰지. 자전거를 배에 잘 싣을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이 큰 배에 우리가족 앉을자리가 없다니
새벽 내내 불편한 잠을 잤던 우리 가족은 여객터미널을 들어가자마자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찌나 복잡하고 사람이 많던지. 말 오일장 시장처럼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길게 늘어선 줄을 많고 사람들은 죄다 돗자리며 캠핑의자를 펴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우리와 같이 배를 처음 타보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 이곳저곳을 헤매는 눈치였다.
차를 선적하기 위한 줄, 배 탑승권을 받기 위한 줄 그리고 승선을 하기 위한 줄이 길고 꼬불꼬불 이어져있었다. 우리는 자전거를 가지고 배에 탑승해야 했기에 애초에 줄을 서는 것을 포기하고 느근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자전거를 배에 직접 가지고 타기 위해선 길고 높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출발 며칠 전부터 유선상으로 문의했지만 차량과 함께 선적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본인 자전거를 들고 계단을 오를 수 없었기에 줄 서기를 포기한 것이었다.
승선 시간이 되어 사람들이 하나 둘 배에 올랐다. 우리도 끝자락에 줄을 서 자전거를 끌고 계단 앞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개표원이 "자전거는 차량 싣는 곳으로 가서 싣고 오세요. 저 계단을 어떻게 올라가려고 그러세요."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자전거를 차량 선적하는 곳에 싣는 것에 기쁘기도 했지만, 자전거 때문에 일부러 줄도 서지 않았는데 억울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말을 할 겨를이 없었다. 하늘에서는 비가 오지, 승선 줄은 아지 끝이 보이지. 빨리 자전거를 차 싣는 곳에 두고 다시 계단을 올라 객실로 갔다.
우리가족의 시련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객실 내로 들어서는 순간 정말 그대로 꼼짝없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매점을 제외한 모든 곳에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거나 누워있었다. 그런 태연한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왜 사람들이 줄을 설 때 돗자리를 가지고 있었는지 캠핑 의자를 갔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예약한 3등 객실은 4곳 정도 되었는데 그 방 안은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당황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는 4시간이나 배를 타야 하는데 발만 동동 구른다고 뾰족한 수가 나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사람들이 복도에 앉아 갔었다는 후기글을 본 것이 기억이 났다. 복도에 가보니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돗자리도 없어 배낭 방수커버를 각자 꺼내 그 위에 앉아야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쳐다보는 통에 불편했지만 진짜 불편함은 그것이 아니었다.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불편하게 앉아 있으니 허리가 끊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드러누워버렸다. 시간이 지나자 우리 맡은 편 자리에도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자리라도 잡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자전거를 배에 선적할 때
보통 배에 자전거를 선적하기 위해서는 소정의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비용을 지불한 만큼 선적한 자전거에 대한 어느 정도 책임의 소재도 여객 측에 존재하기 때문에 차량과 함께 선적을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고흥 녹동항에서 출발하는 아리온호는 자전거에 대한 요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유선상으로 차량과 함께 선적을 못한 것은 공식적인 답변인 듯하다. 차량은 싣는 역할은 대한통운에서 하는데 일을 하는 실무자들은 자전거를 차량과 함께 선적해 주는 눈치였다.
그렇기에 자전거를 가지고 배를 타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전거를 가지고 차량 선적 장소로 가야 한다. 그래야 자전거를 싣고 나와 티켓을 발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여객터미널의 상황을 어떤지 모르겠으나 고흥을 통해 제주로 가는 사람들은 적어도 2시간 전에 자전거를 선적하고 승선 줄에 서야 한다. 그래야 객실 내에 우리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자전거를 선적할 때는 우리가족의 경우 고흥에서는 직원분들이 자전거를 끈으로 고정해 주었다. 하지만 제주에서 올 때는 우리가 직접 끈을 이용해 자전거를 고정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