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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획

소소한 기쁨

by 윤부파파

2024년 나는 육아 휴직을 하며 가장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는 아이들과 피엘라벤 트레킹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제일 유명한 스웨덴에서 진행되는 일정은 아이들이 참여하기에 힘들 것 같아 덴마크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었다. 아내도 허락했지만 비행시간도 길고 둘째 나이가 좀 어려 고민하다가 포기하였다. 그래서 다시 계획한 것이 아이들과 국내로 배낭여행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여름방학에는 전라도 4박 5일 배낭여행, 겨울방학에는 제주도 5박 6일 배낭여행을 다녀왔었다. 두 여행 모두 텐트를 가지고 백패킹을 겸한 배낭여행이었다. 물론 폭염에 갔던 전라도 여행에선 하루만 텐트에서 자긴 했다. 그래도 제주도에 갔을 땐 3박을 텐트에서 잤다. 처음엔 너무 힘들 것 같았지만 의외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중에 가장 좋았던 것은 이동하며 바깥풍경을 보며 기다리는 것들이었다. 버스터미널이나 기차역에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들이 참 좋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직 어린아이들은 그전까지는 어딘가에 놀러 갈 땐 자동차를 타고 이동했기에 집에서 출발해 목적지까지 다이렉트로 가는 아주 특급 여행이었다. 하지만 각자 배낭을 메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동하니 자가용을 이용해 여행할 때와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전라도 배낭여행 첫날 할머니 집인 세종에서 출발했는데 자가용으로 이동하면 3시간도 걸리지 않을 신안의 소금박물관을 기차를 탄 후 버스를 세 번이나 더 타고 7시간이 조금 넘어 도착했으니 말이다. 둘째는 목포역에서 내렸을 때 여기가 소금박물관이냐고 물어봤다. 버스를 세 번이나 더 타고 가야 한다는 말이 아직 와닿지 않는 듯했다. 2번째 버스를 탈 때 둘째의 눈에 눈물이 고였었다.


그래도 여행 둘째 날부터는 아이들도 어느 정도 수긍을 하고 자신들만의 기다리는 시간을 즐기는 법을 터득한 듯했다. 나의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어딘가에 갈 때 편안한 방법 말고도 힘든 방법으로 갈 수 있는 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꼭 힘들게 가는 방법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빙 돌아가는 방법이 시간과 거리가 늘어날 수는 있지만 그만큼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좋았던 추억을 가슴에 안고 있던 나에게 아내가 뜬금없이 내년 1월에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기를 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러한 큰 미끼는 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찾아보니 치앙마이라는 곳에 한 달씩이나 있는 것이 우리 가족의 성향에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지금은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이동하는 배낭여행을 계획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다.


섬이 아닌 섬나라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육로로 국경을 넘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 기차를 타고 하룻밤을 보내는 태국이나 베트남의 슬리핑 기차도 타보고 싶다. 나 빼곤 기독교 신자인 아내와 아들 둘이지만 라오스에 가서 탁발의식에도 참여해보고 싶다. 베트남, 라오스, 태국의 쌀국수와 맥주 맛도 비교해보고 싶다.


아직 실현가능성이 없는 여행이지만 그 여행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지금 이 순간들이 좋다. 올해 아이들과 지리산 종주도 제주도 자전거 일주도 하기로 했었기에 1, 2월을 아주 신나는 기분으로 보냈는데 그것보다 더 큰 설레임 하나가 가슴속에 생겨 지루할 틈 없이 일 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을 가는 것도 좋지만 계획하는 것도 참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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