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잡담

무질서 속 질서

by 모니카

어릴 적 우리 집은 고작 12평이었다. 식구는 여섯인데, 12평이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놀랍다. 성인 된 후 9평 원룸에 살았던 것과 비교하면 더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숫자로만 봐도 좁은 집인데, 내 기억 속 12평은 충분히 넓었다. 여섯 식구가 앉아 있어도 넉넉했고, 손님들이 와도 좁지 않았다. 내 몸집이 작았던 때의 기억이라 오류가 난 것일 수도 있고, 엄마의 정리정돈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엄마의 정리정돈은 정말 최고였다. 오와 열을 맞춰 차곡차곡 쌓여 올려진 그릇들은 찬장 안을 알뜰하게 차지하고 있었고, 서랍마다 접힌 옷들도 계절과 종류별로 잘 구분되었다. 쓸고 닦는 걸 게을리하지 않으니 바닥에 먼지 쌓일 일이 없었고, 딸들이 있어도 머리카락 하나 떨어져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다못해 신발도 열을 맞춰 정리해 놓았던 터였다. 쉽게 쉽게, 뚝딱 해내는 엄마를 보면서 정리 정돈은 쉬운 거라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내게도 그런 습관이 생겼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야말로 나에게는 정리 정돈이 너무나 당연한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집 식구들만의 습관이고 버릇이라는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 친구들의 가방 속만 봐도 달랐다. 어느 친구는 책은 책대로, 공책은 공책대로 정리해 가방에 담아 오는 반면, 어떤 친구는 무슨 과목의 책을 가지고 왔는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정신없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책상 위 상태도 모두가 달랐다. 지우개 가루를 수북이 쌓아놓고 있는 친구가 있고, 물티슈로 연신 닦아내는 친구도 있었다. 내 정리도 바쁜데, 굳이 남 정리까지 배 놔라 감 놔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신경 쓰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말이다.


다만, 정리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과 정리라고는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만나면 참 골치가 아프다. 생각해 보면 남편은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정리하고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가방 속 물건들이 제 자리가 있는지 의심스러웠고, 차 안은 뒤죽박죽이었다. 남편이 되고 나서는 가방도 내가 정리해 주고, 차 안도 내가 정리해 주었다. 괜찮았다. 집 안에서의 습관은 반복적 잔소리 밖에 방법이 없어서 15년 차인데도 잔소리가 이어지는 중이다.


그. 런. 데.


남편 창고를 방문하는 순간, 그동안의 내 생각은 착각이구나 싶었다. 남편도 나를 만나, 예전에 비하면 정리 정돈을 꽤 잘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남편 창고는 그야말로 무질서 그 자체였다. 어떤 물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렇게 해놓으면 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

"그럼. 이 쪽에 있는 건 다른 친구가 잠시 맡긴 거고, 저 뒤에 있는 건 내일모레 써야 하는 거고."


줄줄이 설명을 해대는 남편을 보면서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이 어지러운 와중에도 자신이 써야 할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가끔 누군가의 인터뷰를 보다 보면, 그이의 뒤편 책상이 놀라울 정도로 지저분해 보이는 경우가 있다. A4용지가 사정없이 쌓여있어서 맨 밑의 서류가 무엇인지 모를 것 같은. 그럼에도 그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필요서류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나와 다르게 남편도, 그들도 나름의 방법으로 정리를 했다고 봐야 하는 것일까?? 솔직히 내 기준에 그들의 정리는 정리라고 할 수 없지만, 그들만의 무질서 속 질서가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내가 끼어들었다가 더 엉키고 설키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은. 그들이 편한, 그들만의 방법이 존재한다면 그 또한 존중해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창고를 정리하라 잔소리하고픈 마음이 사라졌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남편 창고 상태가 머릿속에 맴돌고 있다. 한 번 건드리면 하루 이틀로도 모자랄 일이다. 그럼에도 창고를 이렇게 정리하면 좋지 않을까, 저렇게 정리하면 좀 더 넓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냥 눈 한 번 질끈 감고 무시하면 나도, 남편도 편할 수 있을 텐데. 제발 무관심으로. 무관심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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