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자주 보던 친구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된 우정이었고, 서로의 연애과정과 이별과정을 모두 꿰뚫고 있는 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내가 멀리 살아야 할 때는 녀석이 찾아와 주었고, 지금은 녀석이 멀리 가 있어 내가 찾아가기로 했었다.
-잘 지내고 있냐?
찾아가지도 못하고, 벌써 몇 개월동안 얼굴도 못 봐서 톡이라도 보냈는데.
"여보세요. 카톡 귀찮아서 그냥 전화했다. 나야 잘 지내지. 나 근데, 부산 모르겠다."
"어?!"
대전 발령이 난 지 불과 6개월. 그동안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 생각했는데, 발령 6개월 만에 다시 부산 발령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듣자마자 당혹스러웠다. 더욱이 그 6개월 동안에도 벌써 2번 자리를 옮겼다고 했다. 회사를 다닌 지 오래되었지만, 그렇게 발령을 내는 회사가 있다는 건 처음 들었다. 개인이 소유한 회사도 아닌데, 이런 발령을 내는 경우가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내려가라고 하면 내려가야겠지만,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 싶긴 하다."
해 줄 말이 없었다. 당장 달려가 소주라도 한 잔 찌끄려야 하는 건가 싶었지만,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내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짧은 통화를 끊은 후, 마음이 심란해졌다. 목소리를 통해 전해지는 외로움의 농도가 아주 짙어 보였고, 나이와 상황에 발목이 잡혀 말없이 참아내려 하는 자세도 걱정스러웠다. 당장 내 일정을 조정하기 위해 남편과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난데. 나하고 내일 점심 먹자."
"어?"
"점심 먹자고. 시간 돼?"
"그래. 그러자."
다음 날, 녀석은 평소와 다름없이 나타났다. 내가 늘 보아오던 모습 그대로. 그나마 다행인가 싶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녀석 이야기를 들었다. 주로 내가 말을 하고, 녀석이 듣는 편이었는데, 이 날은 녀석이 말을 하고, 내가 듣고 있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걱정이 마음에 쌓였다. 괜찮았으면, 괜찮았으면.
"뭐 어쩌겠냐. 이 나이에 다른 회사 갈 수도 없고. 하라는 대로 해야지."
40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채 조여 오는 현실을 참아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대부분의 내 또래가 비슷한 상황이었다. 물론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런 고민들을 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말 끝에 염려하던 말이 나왔다. 그런 생각에 부정적인 녀석이었는데.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모양으로 보아 생각의 농도가 아주 진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순간 어떻게 녀석의 발목을 잡고 늘어져야 하나 생각했다. 당황하고, 당황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 그대로 바닥까지 치고 올라오라 말하기도, 이겨내려 무엇이든 해보라고 하기에도, 모두 겁나고 걱정되고 무서웠다.
헤어지고 돌아오면서도 내내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것도 답답했다. 그저 녀석을 걱정하고, 또 걱정하는 것밖에 없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인생이라고는 하지만, 가끔 삶의 굴곡이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그 녀석의 가혹한 시간이 제발, 아주 빠르게, 아주 쏜살같이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