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외출에 나서고 있었다. 미리 정해둔 약속도 없고, 만나야 할 사람도 없는데 무작정 집을 나서는 일은 나에게 익숙하다.
'어디 갈까?'
주차장으로 향하는 내내 머리를 굴렸다. 쇼핑을 좋아하는 1인이니 백화점을 설렁설렁 걸어 다녀도 될 것이고, 조용한 카페에 가서 멍 때리며 앉아 있어도 될 일이다. 그것도 싫으면 그저 드라이브 삼아 동네 한 바퀴 돌다오면 되는 일. 그러다가 정 갈 데가 없으면 작업실이라도 가야겠다 싶었다.
작. 업. 실.
그 단어에 헛기침이 난다. 그저 공간이라고 부르면 될 것을 괜히 작업실이 칭했나 싶을 정도로 민망하다. 1평 남짓한 공간에 덩그러니 놓여있을 나의 책상과 의자, 책장이 머릿속에 스친다. 집중하고픈 마음에 최대한 편한 공간을 만들고자 슬리퍼며, 텀블러까지 욕심내서 갖춰놓은 곳이었다. 당충전을 하겠다고 챙겨놓았던 간식은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하지 않을까 싶다.
처음 그곳을 만났을 때 단단히 노력할 것이라 다짐했다.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이고, 돈도 그만큼 들였으니, 아깝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결혼, 육아의 과정 중에 사라진 내 공간에 대한 목마름이 간절했고, 글쓰기에 대한 갈증이 심했으니까,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이들 등교 후 곧장 작업실을 찾아가는 일이 어찌나 신선하던지, 첫 출근 때의 설렘이 떠오르기도 했다. 공용공간에서의 내 구역이 아니라, 오롯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작업실이니 설렘이 끝없이 부풀어 오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곳에서의 나는 이미 훨훨 날고 기분이었다.
점차 흥미를 잃기 시작한 건 아마도 김칫국을 들이켰다 체하기를 반복한 후였을 것이다. 이제 되었다 싶었는데, 다시 보니 엉망이고.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멀었구나 싶은. 동네 뒷산이나 올라야 할 체력으로 감히 에베레스트를 꿈꿨으니 얼토당토 안 한 일이었던 것이다. '정상까지 10분.'이라 속이며 응원해 주는 말처럼, 나 스스로를 속이며 작업실까지 욕심내었나 보다 생각했다. 무릎이 꺾이니, 주저앉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토록 즐겁던 작업실 가는 길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길이 되어 갔다.
멀.어.지.다.
차로 10분 거리인 작업실을 두고, 목적지는 차로 1시간 거리인 남양주로 정해졌다. 목적은 선물 전달. 며칠 전 사놓았던 꽃차를 전해주러 가는 길이었다. 가는 김에 아이들 작아진 옷도 전해줄 참이었다. 종종 만나러 가는 지인이지만 굳이 가지 않아도 되는 길이었다. 작업실을 가고자 했다면 말이다. 이쯤에서 스리슬쩍 등장해 주는 건, 치졸한 핑계다.
머리카락이 보이면 당장 청소를 해야 하는 성격이고, 쓰인 물건은 제때 정리해야 속이 시원하다. 빨래가 잠시 바닥에 있다가는 잔소리 폭탄이 투하된다. 반듯하게 놓이지 못한 물건은 불편하고. 단 하나라도, 쓰지 않는 물건이 집에 쌓여가는 건 답답하다. 쇼핑을 할 때는 당연히 오프라인을 선호한다. 직접 보고 사는 편이 속 편하다. 온라인으로 샀다가 택배의 기다림과 함께 반품, 환불의 시간까지 찾아오면 필요했던 물건도 필요가 없어지는 까칠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나로 인해 시작되는 모든 카레고리에는 느적느적이 아닌 빠릿빠릿을 선호한다. 막상 여기까지 쓰고 보니, 현타가 온다. 이처럼 이중적인 인간이 있을까 싶다. 쓰고 싶은 글을 쓰는 데는 갖은 핑계를 대어가며 느적느적 구는데, 일상에서는 빠릿빠릿하다?? 먹고살기 위해 장착된 생활형 바지런함이라 생각해 약간의 이해를 더해 보겠지만, 유독 글쓰기에 나서지 못하는 것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비밀번호로 채워진 유리문은 7개월째 굳게 닫힌 상태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주인장 때문에 7개월은 8개월로 늘어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