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7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TV가 갑자기 꺼져버렸습니다. 곧 수명이 다할 거란 낌새를 보이기는 했어도 설마 이렇게 빨리 꺼질 줄은 몰랐죠. 하는 수 없이 마트행을 결정했습니다. 흐릿한 우리 집 TV 화면과 다르게 진열된 것들은 모두 어찌나 선명한 색을 자랑하는지, 마치 저한테 딱 맞는 도수 안경을 쓴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고민하고 고민하다 결국 결제가 이루어졌습니다.
솔직히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TV가 아니라 보물이 들어오는 기분이었습니다. 이유인즉슨, 지금껏 제가 구입해 본 TV 중 가장 고가였기 때문이죠. 게다가 예전 것과 다르게 풍채는 얼마나 야리야리한 지.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우직! 하고 깨져버릴 것 같았습니다. 설치가 완전히 끝난 후,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데 마치 영화관에 온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마음에 쏘옥 들었습니다.
다만, TV 위치가 소파에서 보니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었습니다. 고민할 거 없이 저는 바로 일어나 제 위치 찾아주기에 돌입합니다. 들어 옮기는 게 아닌지라 작업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끝났습니다. 그렇게 TV 위치를 살피며 소파에 앉았는데, 이번에는 블랙 화면 위에 찍힌 제 손자국이 보입니다. 아마도 옮기는 와중에 생긴 것이겠죠. 또 한 번 벌떡 일어나 마른행주를 찾아 손자국을 지우기 시작합니다. 입김까지 불어가며 손자국을 지우다 문득 냉장고로 시선이 갑니다.
생각해보니 3년 전 냉장고에 집에 들어올 때도 그랬습니다. 손자국이 티도 나지 않는 표면이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냉장고 문을 닦고, 냉장고 안에 떨어진 작은 먼지만 보여도 큰 일 날 세라 바로바로 치웠죠. 그렇게 소중함을 티 내며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 집에 같이 살고 있는 모든 물건이 그랬습니다. 새 것의 기분을 오래 느끼고 싶어서 처음에는 열심히 닦고, 아끼죠. 그러다 새 것에 대한 설렘이 줄어들 때쯤이면 익숙함에 귀찮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관리가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매일 닦던 것을 3~4일 한 번으로. 3~4일에 한 번이던 것을 일주일, 보름, 한 달로요.
정말로 물건에 대한 소중함에 유효기간이 작동되는 걸까요. 저는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