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 속초에 살던 나는 강릉 나들이에 나섰다가 속초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속초에 터를 잡은 지 채 1년도 되지 않은 날이었지만, 그날따라 바람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날아가는 광고판과 주름 하나 없이 펄럭이는 깃발들. 그리고 무심코 내뱉었던 말.
"오늘 같은 날. 불나면 안 되는데."
입이 방정이라서일까. 속초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이 이상했다. 햇볕은 쨍쨍인데, 먹구름이 낀 것처럼 하늘이 뿌옇게 보였다. 그때까지도 난 알지 못했다. 먹구름이 아니라 산불로 피어나는 연기였다는 걸 말이다.
설악산의 아우쯤으로 속초를 감싸고 있던 청대산에 불이 났고, 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인근 주민들에 대피령이 떨어지고. 소방차와 헬기들이 바쁘게 오가며 불을 잡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날, 나는 먼발치에서 청대산 산불을 바라봤다. 산줄기를 따라 붉은 불기둥이 이어져 있는 걸 눈으로 보면서 산불이 얼마나 무서운지 처음 알았던. 그래서 절대 잊히지 않는 기억이 된 날이었다.
내가 속초에 살았기 때문인지, 청대산 산불을 직접 경험했던 탓인지. 그 뒤로 나는 산불 소식이 전해지면 마음이 저릿해온다. 양양 산불 때도, 강릉 산불 때도, 2019년 속초 산불 때도 그랬다. 그리고 얼마 전, 울진 산불 소식을 들었을 때도 정말 마음이 안 좋았다.
나는 지금 동쪽이 아닌 서쪽에 살고 있고. 산불과는 거리가 있는 동네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요 며칠 강한 바람이 불어오는 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이런 바람이 불 때는 누구를 막론하고 '불조심'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꼭 해줬으면 싶다. 간절하게. 아주 간절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