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겨울방학이 종료됐습니다.
지난 12월, 방학이 시작된다고 할 때는 두 달이나 되는 방학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걱정이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가는 것도 해봐야 고작 일주일이고, 뭘 해야 시간이 얼른 지나갈까 태산 같은 걱정을 했더랬죠. 개학을 한 지금 생각해 보니 노파심이었습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 스케줄이 참 빡빡합니다. 방학이라고 해봐야 학교 일정만 빠질 뿐이죠. 어떤 때는 학교 일정에 학원 보충이 끼어들면서 더 빡빡해지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런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좀 쉬엄쉬엄 했으면 싶죠. 하지만,
"지금 해놔야 다음 학년(학기)에 편할 거예요."
"다른 아이들에 비해 진도가 빠른 편이 아니어서요."
라는 말이 귀에 박힙니다. 빡빡한 스케줄에 아이가 지치지 않을까 걱정되면서, 동시에 아이가 새로운 학년(학기)에 올라가서 힘들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현재의 힘듦과 미래의 힘듦을 동시에 염려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저는 이번 겨울방학은 현재의 힘듦을 견뎌 미래의 평온함을 기대해 보기로 했습니다. 가능하다면요. 그래서 방학 동안 특별한 일정 없이 아이들을 꼬박꼬박 학원에 보냈습니다. 하루는 영어학원에, 하루는 수학학원에. 틈틈이 태권도와 미술로요. 물론 빠진 학교 일정에 보충 일정을 끼워 넣진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힘들까 걱정이 됐거든요.
그렇게 방학 첫 일주일이 후다닥 지났습니다. 그날 저녁, 밥을 먹는데 큰 아이가 그러더군요. 친구 중에 한 명이 미국에 갔고, 한 명은 제주도에 갔다고요. 순간, 멈칫했습니다. 여행일정이라고는 전혀 없는 겨울방학을 보내게 하는 게 미안해지더군요. 놀고 싶은 아이를 강제로 못 놀게 하고 있는 건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레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놀러 가고 싶어?"
"아니. 전혀. 나는 친구들하고 만나서 노는 게 더 좋아. 내일도 학원 끝나고 잠깐 놀 거야. 주말에도 놀기로 약속해 놨어."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습니다. 불쑥 솟아올랐던 미안함이 스르륵 사라지더군요. 학원 스케줄 중 빈 시간에는 친구들과 놀게 해 준 것이 너무 신났던 모양입니다. 그 뒤로도 가족여행에 대해 아이들 의견을 물었지만, 때마다 아이들은 괜찮다고 대답하더군요.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다고요.
그렇게 방학이 끝나갈 즈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제 가족여행을 못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아이들이 커갈수록 또래 친구들을 좋아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부모와 있는 시간보다 친구와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부모의 말보다 친구의 말 한마디가 더 큰 영향을 주는 때요. 주변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보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긴 했지만, 막상 가족여행에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아이들을 직접 보니 '곧'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더군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학원 스케줄에 밀린 가족여행이, 또래 친구들한테도 밀리겠구나 싶었으니까요. 이미 아이들 마음속 우선순위가 바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결국 며칠 후 저는 지금이라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가족여행을 예약했습니다. 하고 나니 아이들이 설레는 목소리로 물어옵니다.
"수영장 있는 곳이야?"
"응."
"우와. 그럼 가자마자 수영할 수 있는 거야?"
"그럼."
"수영복 챙겨야겠다. 수영복!"
단단히 즐길 채비를 한 우리 가족은 개학 일주일 전 푸른 바다가 펼쳐지는 강원도 고성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은 수영장을 보자마자 퐁당 빠지더니 몇 시간을 아주 신나게 놀더군요. 짧지만 알찬 2박 3일간의 일정이었습니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새삼 제가 참 오지랖이 대단하구나 싶네요.
쓰는 내내 저는 정말 치열하게 고민했구나 생각했습니다. 긴 방학 계획을 어떻게 짜야 하나 싶었고. 방학을 풍성하게 만들려면 가족여행을 가야 할 것 같고. 가족여행을 가자니 학원스케줄을 너무 많이 빠져야 할 거 같고. 방학 동안 학원만 가게 하는 것 같아 미안했고. 친구들과 노는 게 더 좋아서 가족여행이 뒷전이 된 건가 싶은.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학원만 가는 방학이 아니라 친구들과 신나게 놀기도 하는 방학이었고, 친구들과 노는 것도 좋지만 가족여행 역시 설레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요. 학업과 휴식의 밸런스를 아이들 스스로 잘 맞춰가고 있었는데, 저는 제가 밸런스를 맞춰주려 했으니. 이 얼마나 어줍지 않은 오지랖입니까.
매번 깨달으면서도,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참... 그만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