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1명 & 아이 2명, 배편으로 가기
'제주 = 비행기' 이것이 제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제주여행의 공식이었습니다. 이동시간보다 여행시간이 많은 게 당연히 이득이니까요. 좀 더 저렴한 비행기를 골라 예약하고, 비행기로 이동하는 동안 불편하지 않게 짐을 꾸리고. 도착해 우리 가족이 탈 수 있는 적정 수준의 차를 렌트하고.
하지만 척척 진행될 것 같은 일들도 변수가 생기게 마련이고. 이번 여행의 변수는 남편이 동행하지 못하게 된 일이었죠. 정해둔 숙소는 이미 송금을 마친 상태에, 아이들 학교에도 체험학습을 낸 상황. 남편 없이 가족여행은 솔직히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다음에 갈까?"
"그 숙소 예약하기 어렵다며. 그냥 가."
"나 혼자 어떻게."
두 아이와 짐 가방을 챙기며 공항에 가고, 비행기를 타고, 렌트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렌트 후 숙소 이동까지. 들었다 놨다 해야 하는 짐 가방들이, 여행 전부터 나의 에너지를 모두 집어삼키는 기분이랄까요. 꼭 가보고 싶었던 숙소였음에도 짐의 무게에 눌려, 여행의 흥미가 떨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배로 갈까?"
"배? 괜찮겠어? 너무 오래 걸리잖아."
"짐을 들었나 놨다 하는 게 더 힘들 거 같아서."
"그래. 그럼. 배편 알아봐."
맞습니다. 배로 가는 제주여행은 100% 저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짐 무게만 덜어도 제주여행이 좀 편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짐 걱정이 긴 이동시간을 이겨먹은 겁니다. 더해서, 우리 차를 가져가면 렌트했을 때의 불편함도 없앨 수 있잖아요. 차 안에서, 배 안에서. 지겨워할 아이들 생각은, 일단 뒤로 미뤄둔 것이죠. 그보다 우리 차로 바다 앞에서 차크닉을 하면 아이들도 좋아하지 않을까를 먼저 상상을 했더랬습니다.
그렇게 아이들과 저는 새벽 2시 30분이 넘어서 목포로 출발했습니다. 9시 출항하는 배는 7시부터 차를 선적할 수 있거든요. 컴컴한 하늘을 가르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향하는 동안 아이들은 불편한 자세로 잠을 청했습니다. 그렇게 3시간쯤 달렸을 때, 산능선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맞은 일출이었습니다. 운전하느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새어 나오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아우라가 느껴지는 것 같달까요. 달리면서 맞이하는 일출도 꽤 괜찮았습니다.
해가 뜨고도 1시간 40분을 더 달려 도착한 목포국제여객터미널.
"자, 동승자 분들은 내려서 터미널에서 대기해 주세요."
"네?"
"동승자들은 내리셔야 합니다."
"아이들이라서요. 같이 배에 탔다가 내리면 안 되나요?"
차를 선적하는 동안, 동승자들은 터미널에서 대기하라는 말에 순간 덜컥했습니다. 보호자라고는 저 밖에 없는 상태인데, 차량은 선적해야 하고. 그럼 아이들끼리만 터미널에서 대기해야 하니까요. 아무리 핸드폰이 있다고 해도, 보호자 없이 아이들끼리 터미널에서 대기하는 건 불안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렇다고 배 안이 더 위험할 수 있다고 하는데, 고집을 피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어디 가지 말고. 꼭 여기 있어. 핸드폰 손에 쥐고 있고. 응?"
"알았어."
신신당부는 했지만, 아이들이 무서워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얼른 선적하고 아이들 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안내에 따라 입 벌린 배 안으로 차를 끌고 들어갔죠. 역시나 안에도 안내해 주는 분들이 계시더군요. 손 신호를 따라 2층으로. 또 신호를 따라 앞 차량 뒤에 바짝 붙여 주차했습니다. 차에서 내리는데, 꽤 많은 인원들이 허리를 굽힌 채 주차된 차량들에 끈을 묶고 있더군요. 사방으로 묶인 끈을 넘어가며 터미널 통로로 향하는 동안, 왜 동승자는 내려야 했는지 이해했습니다. 좁은 통로를 지나서 1층 화물차 선적공간으로 나왔을 때는 순간, 조명 없는 어마어마한 공장에 서 있는 기분이었네요. 좀 무서웠습니다.
그것도 잠시, 터미널에서 저만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생각에 오랜만에 뜀박질을 했습니다. 보호자로서의 책임감이 팍팍 느껴지던 순간이었죠. 다행히 아이들은 핸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얌전히 앉아있더군요. 두 아이에게 괜찮았냐 물어보며, 손을 꼭 잡았습니다. 따뜻하게 전해지는 온기가 안심하라 다독여주는 기분이더군요.
아이들과 저는 그 후로도 1시간 정도 대기한 후에야 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타보는 크나큰 배였죠. 층계를 오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야 로비가 나오더군요. 빵집과 식당, 편의점, 오락실까지 있어서 항해하는 동안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객실키는 안내에서 받으시면 됩니다."
알려주는 대로 안내데스크로 가서 객실키를 받았습니다. 5층에도, 6층에도 객실이 있더군요. 저희는 6층 객실을 배정받았고, 객실로 가기 전 편의점에 들렀죠.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 없듯이. 기차에 타면 계란과 사이다를 찾아야 하는 것처럼. 4시간 30분 항해를 위해선 달달한 간식거리가 필수라 생각했거든요. 마침, 아침을 먹어야 하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이것저것 집어 들고 계산한 다음, 6층으로 올라갔습니다. 6층 로비는 창가 쪽으로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여있더군요. 특별히 지정된 좌석은 아니고, 빨리 좌석을 맡은 분들이 혜택을 받는 자리인 듯싶었습니다. 저희가 올라갔을 땐, 이미 창가자리는 만석이었네요.
가장 뜻밖의 장소는 객실로 향하는 복도였습니다. 한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좁았거든요. 반대편에서 이미 진입한 상태라면 기다려야 하죠. 그렇게 패밀리 객실에 입실했습니다. 신을 벗고, 편하게 누워서 잠을 청할 수 있는 공간이었죠. 호텔급 객실을 기대하진 마시길!! 굳이 비교를 하자면 대학가 1인 원룸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저는 뭐, 새벽 내내 운전을 하고 목포까지 간 상태라 피곤에 지쳐 거의 쓰러지다시피 잠을 청했기에, 객실 크기는 별로 상관이 없었네요.
출항 1시간 경과.... 남해 섬들 사이를 지나고.
출항 2시간 경과... 옆 방 소음이 살짝, 잠을 깨고.
출항 3시간 경과... 파도만 보이는 어딘가...
출항 4시간 30분... 저 멀리 제주의 능선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길었다면 길고, 짧았다면 짧은. 배편으로 떠난 제주여행. 그 시작을 알리는 제주항 위로 비행기가 낮게 날아가네요. 이제 진짜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