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독약 세례를 시원하게 받으면서 제주에 입성한 날, 날이 정말 좋았습니다. 목포에서 배를 탈 때만 해도 경량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쌀쌀했는데, 불과 4시간 거리의 제주는 완연한 봄을 너머 여름 같더군요. 3년 만에 찾은 제주여서인지, 날이 좋아서인지, 다 왔다는 안도감인지. 오랜만에 설렘이 퐁퐁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배 안에서 선잠을 잤던 터라 몸이 천근만근인데도 마음은 벌써 다음 일정을 어찌할까 고민하고 있었다니까요.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일단 숙소로 향하는 길, 선명한 옥빛바다가 펼쳐지는 광경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미리부터 찜해두었던 숙소 위치는 신엄리였습니다. 우연히 검색하다 발견한 곳이었죠. 사진으로 반하고, 후기에 또 한 번 반하게 된. 결정적으로 따뜻한 노천탕이 있다는 얘기에 굳게 마음먹었죠. 대충 남편과 상의한 후, 곧장 예약절차를 밟았습니다. 선 여행계획 후 숙소예약이 아니라, 선 숙소예약 후 여행계획을 세우게 된 경우랄까요. 아이들에게는 숙소 예약 후, 여행일정을 통보했습니다. 그럼에도 학교에 안 간다는 사실에 일단 무조건 오케이라 하더군요. 콩 심은 데 콩 난다고. 역시나 저의 아이들인가 봅니다. ^^
숙소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피곤함의 기세가 장난 아니더군요. 다음 일정을 생각하던 설렘은 잊은 채, 그저 침대에 널브러지겠다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몽롱함에 네비가 가르쳐주는 길을 두 번이나 놓쳤고, 큰아이가 옆에서 알려주지 않았다면 세 번째 길도 지나칠 뻔했다는 건, 안 비밀이네요. 햇빛을 받은 진한 돌담들이 켜켜이 쌓인 돌담을 따라 조심스레 진입한 마을은, 한적하고 조용하더군요. 관광지라기보다 농촌마을 같은 분위기랄까요.
"우와. 나무 봐. 정말 오래됐네. 꼭 당산나무 같다."
"당산나무는 뭐야?"
"마을을 지켜주는 나무라는 거야. 어! 우리 숙소다."
마을 수호신 같은 나무를 만난 골목 삼거리, 돌담 너머로 사진으로만 봤던 그 집이 보이더군요. 얌전히 얹은 회색빛 박공지붕, 집 둘레를 따라 쌓은 돌담, 툇마루 모서리에 이어진 작은 연못. 일단 숙소의 첫인상은 정말 좋았습니다. 숙소 하나만 보고 계획했던 여행인 만큼, 나의 기대치를 꼭 채워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한적한 마을 안에 세련됨을 장착하며, 뽐내는 건물은 아니어서 더더욱 좋았습니다.
"우와. 엄마, 여기에 개구리도 있어."
먼저 차에서 내렸던 아이들은 새로운 집을 탐험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파트에만 살았던 아이들에게 마당이란 공간은 그렇게 호기심을 솟구치게 하는 곳인 걸까요. 앞마당, 옆마당에 이어 뒷마당까지의 탐험이 줄곧 이어졌답니다.
"엄마, 이리로 와 봐. 여기에 뭐가 있어!"
잔뜩 올라간 목소리에 무슨 일이 있나 얼른 달려갔습니다.
"이거 봐. 이거 뭐야?"
"아. 이거 엄마가 사진으로 보여줬던 노천탕."
"정말? 그럼 여기서 놀아도 돼?"
"그럼."
뒷마당에 비밀스레 숨겨져 있던 노천탕을 찾은 아이들은 목소리만 아니라 입꼬리까지 활짝 올라갑니다. 이쯤 되면, 수영복부터 찾는 게 당연한 일이겠죠. 숙소를 향한 저의 기대가 밖에서는 다행히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우와, 엄마! 여기 완전 좋아!!"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아이들의 환호성이 이어집니다. 바깥 탐험을 끝낸 아이들이 저보다 먼저 실내 탐험에 들어갔거든요. 저 역시 트렁크 하나를 들고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탁월한 숙소 선택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상큼한 향기와 따뜻한 온기가 포근했거든요. 청소상태도, 주방도, 화장실도, 추가침구도 모두 만족이었습니다. 큰아이는 층계를 올라 마주한 다락방에서 소리치더군요.
"엄마! 여기 짱 좋아. 완전. 완전!"
아이들과 여행을 하다 보니, 숙소에 민감한 편입니다. 큰아이가 어릴 적 아토피가 있었고, 위생적으로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하면, 여행 내내 찜찜한 기분을 없앨 수 없거든요. 제주 일주일 살기를 할 때, 렌트했던 단독주택의 흑역사도 아직 생생하고요. 여기서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아이들도 저도 모기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따뜻해지는 계절이 오면, 모기와의 전쟁을 벌이거든요. 때문에 대체적으로 숙소는 호텔인 경우가 많았고요. 이토록 만족스런 집을 만났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웃었습니다.
이번 숙소의 신의 한 수. 물론 노천탕도 있었지만, 집 안에 마련된 평상 위로 활짝 열리는 폴딩도어가 아니었나 싶네요. 폴딩도어를 열면 보이는 돌담 너머로 푸른 하늘이 펼쳐지는 게 정말 좋았거든요. 처음으로 찾아낸, 5일간의 제주 집 이야기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