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살면 이럴까?
꽤 오래전, 첫 제주여행을 떠날 당시만 해도 제주에 대한 정보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관광객으로 도착해, 관광지를 다니는 여행이었죠. 천지연폭포, 정방폭포, 외돌개, 성산일출봉, 우도 등등. 이제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의 코스였죠. 무슨 공식도 아닌데, 첫 여행에서는 가장 유명한 곳을 찾아봐야 당연하다 생각했던 듯합니다.
1년에 한 번 꼴로 제주여행을 하면서는 방식을 달리했습니다. 2박 3일 동안 제주의 동서남북을 다 즐기려면 도로에서 버리는 시간들이 꽤 되더라고요. 그래서 동쪽이면 동쪽, 서쪽이면 서쪽을 정해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러다 보니 2박 3일이 너무 짧게 느껴지더군요. 그렇게 3박 4일이 되었고, 3년 전에 갔던 제주여행은 4박 5일이 되었죠.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일주일 일정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학교장재량휴업일에, 휴일까지 있는지라 체험학습을 최소로 사용해서 일주일을 떠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숙소 예약이 안 된 관계로 5박 6일로 만족해야 했죠. 숙소에, 배편 예약에, 이제는 여행 내용만 정하면 되는 상황. 앞선 여행들과 비슷한 방식의 여행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이곳저곳 이동하기에 저질체력이기도 하거니와, 그동안의 여행경험으로 보아 그런 여행은 아이들도 별로 재미있어하지 않는 것 같았거든요. 제 고민을 어떻게 알았는지, 인스타를 보는 와중에 제주에만 있는 특별한 곳을 발견하게 되었답니다.
붓에 물감을 묻혀 캔버스에 흩뿌리며 채워가는 그림과 붓이 아닌 나이프를 이용해 캔버스를 채워가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곳이었죠.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그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큰아이가 불렀습니다. 아이에게 특별한 경험을 시켜주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인데, 아이는 별로라 할 수도 있잖아요.
"이거 어때? 제주도에 있는 곳인데, 한 번 해보면 좋을 거 같아서."
"내가 직접 하는 거야?"
"응. 직접 해볼 수 있대."
"해볼래."
제주에 가면 바다탐험에 나서겠다는 아이는 영상을 보는 내내 눈을 반짝였습니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이번 여행은 100%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스케줄로 움직여야겠다 생각했죠. 바로 예약절차를 밟았습니다.
바다탐험을 위한 장비 준비도 철저히 했습니다. 캠핑의자, 돗자리, 차크닉을 위한 트렁크 커튼, 파라솔, 장화. 날이 좋은 날, 하루를 통째로 바닷가에 보내보자는 계획이었죠. 시간 단위로 움직이며, 바다에서 잠깐이 아니라 정말 뽕을 뽑으며 놀았다는 말이 나오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엄마, 나 여기 가보고 싶어. 이거 제주에 있대."
유튜브를 보던 둘째 녀석이 휴대폰을 들고 뛰어나오더군요. 실내 클라이밍센터처럼 보이는 곳이었죠.
"여기?"
"응. 꼭 가보고 싶어."
"그래. 가자."
유튜브에서 몇 번을 봤던 곳이었는지, '꼭.'이란 단어까지 써가며 부탁하더군요. 아이들을 위한 여행인데, 못 갈 이유가 1도 없잖아요. 곧바로 오케이를 외쳤습니다. 그 후에 찾아낸 곳은 키즈카페였습니다. 볼풀공과 미끄럼틀만 있는 평범한 곳이 아닌, 키가 110cm 이상인 아이들과 성인들도 놀 수 있는 곳이었죠. 분점이 몇 군데 없는 관계로 제주에 간 김에 즐겨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제주여행의 일정이 대충 정해졌습니다. 유명관광지나 핫플이라는 곳은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죠. 특별한 제주여행이 아니라, 제주에서의 일상여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덕분에 제주에 있는 동안, 맑은 날씨의 제주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외출에 나섰고,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오는 날대로 즐길 수 있었죠.
셋째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저녁에는 뒷마당과 노천탕을 오가며 놀았습니다. 따뜻한 노천탕과 차갑게 내리는 비가 궁합이 좋더라고요. 비 맞는 걸 싫어하던 큰아이도 마음껏 비를 즐길 정도로 신났던 시간이었습니다.
맛집 한 번, 카페 한 번을 가지 못한 제주여행이었지만 그동안의 어떤 여행보다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습니다. 아이들도 너무 즐거웠고, 재미있었던 여행이라고 하고요. 아마도 이런 여행을 조만간 한 번 더 가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