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응원하는 작은 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마치 신부의 부케처럼 생긴 이 나무의 이름은 무늬아악무. 사랑무라고도 한다더군요. 처음 이 나무를 만났을 때의 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느닷없이 날아온 택배에, '이건, 뭐지?' 했거든요. 보내는 사람은 없고, 받는 사람만 있는 택배. 뜯어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엄청 했더랬습니다. 이런저런 보이스피싱이 난무하는 시대에 살다 보니, 느닷없는 택배가 황당하고 께름칙한 건 어쩔 수 없잖아요.
못 먹어도 고!
일단 택배를 열기로 결정했습니다. 설마 평범한 가정집에 폭탄 같은 게 배달됐을 리는 없으니까요. 다만, 잘못 온 택배라면 뜯은 것에 대한 변상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택배를 열었을 때, 후각을 자극한 건 신문지 냄새였습니다. 무언가를 돌돌 말아, 단단히 고정시켜 놓은 신문지가 상자 가득이었거든요. 하나, 둘, 신문을 걷어내고 보니, 이번에는 뽁뽁이 비닐. 이쯤 되니 보낸 이가 물건이 상하지 않게 해 달라 단단히 부탁한 건 아닐까 싶었습니다. 또 한 번 갈등이 오더군요. 다른 이의 선물을 내가 허락 없이 열어보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그래도 뭐, 일단 고!
뽁뽁이를 살짝 걷어내는 순간, 알겠더군요. 무늬아악무 화분이라는 걸. 신기했습니다. 봄이 시작될 무렵, 집에 화분을 드릴까 싶은 생각에 검색을 했더랬어요. 그때, 유독 눈에 띄는 녀석이 바로 무늬아악무였습니다. 하얀 꽃잎 끝으로 분홍 테두리를 가진 것도 특별해 보였고, 통통한 작은 잎이 앙증맞은 게 너무 귀여웠거든요. 당장이라도 살까 싶은 생각이 솟구치던 찰나, 제가 성실한 식집사가 아님이 떠올랐습니다. 꽃이 있는 식물들은 대게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하는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결국 한눈에 반했던 무늬아악무는 포기했습니다. 괜히 데리고 왔다가 혹여나 안 좋은 이별을 겪게 될까 봐서요.
마치, 제 생각을 읽은 듯 한....
반가움도 잠시, 찝찝한 기분이 영 가시질 않더군요. 일단 송장에 찍힌 화원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몇 번을 걸어도 소용이 없었어요. 찍힌 주소도 검색했습니다. 도통 알 수 없는 지역에, 제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더군요. 제 이름을 적긴 했지만 남편에게 온 택배는 아닐까 싶어, 남편에게도 무늬아악무가 왔음을 알려주었죠. 남편 역시 그런 걸 보낼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요. 하, 출처를 알 수 없는 찝찝함을 집 안에 들이는 건 좋지 않다 생각했습니다.
어쩔 수 없다.
남편과 저는 상의 끝에 찝찝한 물건을 갖고 있느니, 버리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뽁뽁이를 다시 돌돌 말고, 신문지를 돌돌 말고. 온 모양 그대로 다시 택배 상자에 담았습니다. 며칠 내로 주인이 나타나면 좋겠지만, 안 나타난다면 내일모레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 같이 버리겠다 생각했죠.
다음 날,
저는 뒷베란다로 쫓겨난 무늬아악무를 잊은 채 외출을 했습니다. 그리고, 절친의 전화를 받았죠.
"화분 받았어?"
"무슨 화분?"
"택배 도착했다고 하던데."
순간, 무늬아악무가 떠오르더군요. 절친의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최근 작업실을 마련하게 된 저에게 화분 하나를 보내고 싶었고, 검색하던 중 무늬아악무가 딱이라 생각했다고요. 택배가 도착하는 날 전화해서 '서프라이즈!'를 해 줄 생각이었다 합니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깜빡하고 저한테 전화를 못한 것이죠.
전화 한 통에 없어진 찝찝함.
사랑무는 사랑무대로, 절친은 절친대로. 제가 마음을 너무 몰라주었나 싶어 미안해지더군요. 차마 세탁실로 쫓겨난 사랑무 소식은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두었다고만 설명했죠. 고맙다 인사한 후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갔죠. 외출했던 이유를 뒤로 한 채 일단 사랑무부터 챙겼습니다. 세탁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상자가 얼마나 안타깝던지. 조심스레 들고 나와 신문을 걷어내고, 뽁뽁이를 벗겼습니다. 그 사이 사랑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잎이 우수수... 떨어지더군요.
당장 화원으로 고!
택배에 쌓여있던 시간을 포함해 무려 이틀 넘게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던 사랑무. 당장 분갈이를 해서 편하게 해줘야겠다 싶었습니다. 이틀 동안 햇볕도 보지 못한 상태였거든요. 화원에서 분갈이를 하는 내내 조심스러웠습니다.
"화분에 물이 너무 많네요. 뿌리가 없어. 당분간 물 주지 마시고, 해 많이 보여주셔야 돼요."
화원 직원의 말에 마음이 덜컹했습니다. 부랴부랴 분갈이를 해줬는데도 소용없는 건 아닐까 싶었거든요. 식물한테 물이 많은 것도 안 좋고, 뿌리가 자라지 못한 것도 안 좋잖아요. 사랑무를 열심히, 잘 키워줬으면 좋겠다는 절친의 당부가 귓가에 스쳤습니다. 불안한 마음 반, 괜찮을 거란 마음 반으로 작업실로 향하는 길. 사랑무를 보면서 내내 튼튼해져라 기도했습니다.
기쁜 소식.
첫 만남 이후, 어느새 한 달이 지났습니다. 뿌리가 없어 뒤뚱거리던 사랑무는 이제 화분 안에서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처음보단 좀 더 단단해 보이거든요. 해를 많이 봐야 꽃잎에 예쁘다고 했었는데, 여전히 꽃잎색을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해도 적당히 보고 있는 듯합니다.
기쁜 소식은 사랑무의 꽃말입니다. 절친이 말해주었죠. 예쁜 화분이라고만 생각했지, 꽃말까지는 생각지 못했어요. 절친은 제가 새로운 작업실에서 기쁜 소식만 듣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사랑무를 볼 때마다 자신이 응원하는 것도 까먹지 말라더군요. 현재스코어, 절친의 응원대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 작업에 대한 기쁜 소식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희망을 놓지 않고 있고요. 사랑무를 볼 때마다 절친이 응원해 주는 것 같아 으쌰으쌰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제가 사랑무를 키워볼까 했던 걸, 절친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진짜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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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에 쌓여 찝찝한 물건이라 취급받았던 무늬아악무는 이제 없습니다. 제 작업실 볕 좋은 창가엔 저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이의 사랑무가 있을 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