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잡담

세입자 누수 경험담

by 모니카

숨 막히는 더위가 막 시작되려던 시기였다.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맞이한 월요일 아침, 느닷없이 조용하던 인터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살면서 몇 번 들어보지 못한 인터폰 소리라서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어리둥절했다. 그러다 인터폰 화면이 밝게 빛나고 있는 걸 발견했고, 늦지 않게 통화버튼을 눌러 관리사무소와 연결이 되었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동 ****호 맞으시죠?"

"네."

"다름이 아니고요. 밑에 집, 화장실에서 누수가 발생해서 집을 좀 확인해야 하는데, 지금 올라가도 될까요?"


가벼운 안내이거나 잘못 울린 인터폰일 거라 예상했는데, 아랫집 누수라니.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지면서 상황정리가 되지 않았다. 일단 관리사무소 직원의 집 방문에 오케이를 한 후, 통화를 끊고 생각했다. 아랫집의 누수? 우리 집의 문제라면 일단 집주인에게 알려야 한다. 화장실을 대대적으로 공사하는 건 아니었으면 싶은데, 공사를 하게 되면 짐은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가운데, 관리사무소 직원들이 찾아왔다.


"아랫집 안방 화장실 문 쪽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어서요. 확인 좀 하겠습니다."

"네."


낯선 사람들의 안방행을 바라보면서도 머리가 복잡했다. 제발, 우리 집의 문제가 아니기를. 아니기를. 직원들은 익숙한 태도로 화장실을 확인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흠. 이 집은 위에서 새는 게 없네요. 13층 인테리어 공사 때문에 누수가 생겼나 했는데, 아닌 거 같아요. 아무래도 이 집에서 누수가 발생한 거 같은데, 그건 저희가 확인이 안 되고, 직접 누수 업체를 부르셔야 합니다."


내가 생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관리사무소 직원들은 누수업체를 빨리 부르라는 이야기를 남긴 채 사라졌고, 곧이어 나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재 상황 설명, 관리사무소 직원의 방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누수 업체를 불러야 한다 전달했다.


처음 이 집을 계약할 때부터 '나의 집'처럼 깔끔하게 사용하길 바랐던 집주인이었고, 소소한 공사에 대해 늘 너그러웠던 집주인이었다. 너그러운 집주인을 만났으니, 세입자인 나도 너그러워지자 싶어, 살면서 불편했던 것들. 예를 들어 망가진 방충망을 교체하는 작업이나 전등을 LED로 교체하는 것은 말없이 내 돈으로 고치고 살았다.


하지만, 누수가 발생했다는 소식에 집주인의 행동은 내가 보아온 것과 180도 달랐다. 누수 업체를 부르기도 전부터 비용 걱정을 하더니, 화장실 전체 방수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숨부터 쉬었다. 적은 비용이 아니니 당연히 부담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다. 나 역시 갑자기 큰돈이 들어가는 공사에 한숨부터 쉬었을 테니까. 하지만 공사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태도는 이해되지 않았다. 이미 누수가 발생한 지 2주가 지나가고 있었고, 아랫집은 아랫집대로, 세입자인 나는 나대로 불편함을 감수하며 시간만 흐르고 있었으니까.


결국 전체공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업체의 이야기는 넘겨버린 채, 부분공사만 진행해도 된다는 업체를 찾은 집주인은 부분공사를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결정권이 없는 세입자 입장에서 부분 공사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지만,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정말 답답하게 느껴졌다. 공사가 잘 되면 다행이지만, 공사로 안 된다면 지금껏 불편했던 시간에 앞으로의 불편해야 할 시간이 더해지게 되는 것이니까.


이미 한 달 가까이 누수업체만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고,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집주인의 결정대로 부분 공사가 시작되었다. 공사를 하는 동안, 내내 기도했다. 제발 부분 공사로 아랫집 누수가 완전히 해결되길. 그래서 또다시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공사하는 일이 없길. 하지만,


-아랫집입니다. 기존 누수됐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누수가 일어났습니다.


부분 공사를 진행하고 정확히 한 달 후, 이른 아침부터 울린 문자의 내용이었다. 젠장. 제발 일어나지 않길 바랐던 일이 일어나고 만 건가. 부랴부랴 공사업체에 연락하고, 그 사이 해외로 출국한 집주인에게도 톡을 남겼다. 부분 공사를 진행했던 업체는 점심시간이 지나자마자 집으로 찾아왔고, 아랫집과 우리 집을 번갈아가며 살폈다. 문 앞에서 새던 것이 물길이 바뀌어 다른 곳에서 새고 있는 상황이었다. 원인을 찾아 우리 집과 아랫집을 오가던 이들은, 일단 공사를 했던 부분에 대한 점검을 마친 한 후 일단 지켜보자 말하고 돌아갔다.


5월 말에 시작된 일이 8월 말인 현재스코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다. 그 사이 아랫집 누수는 없어졌다고 하지만, 누수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우리 집은 다시 누수가 된다고 한 날부터 욕조 벽면의 일부를 임시로 막아놓은 채 사용하고 있다.


누수가 없어졌기에 상황이 종료된 것이라 한다면 할 말 없다. 다만, 이대로 정말 종료된 것이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다시 불편한 시간들을 겪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은 불안감에, 마음이 불안하다.


이번 누수를 경험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집주인은 집주인대로의 예의를, 세입자는 세입자대로의 예의를 갖춰야 하고. 아파트가 좋다고 하지만, 누수라는 취약점이 있고. 누수업체를 부를 때는 정말 잘하는 곳을 찾아봐야 하며, 아랫집과 윗집의 관계는 층간소음에만 그치지 않고. 있던 것을 못쓰게 되는 불편함은 꽤 크게 느껴지며, 낯선 사람들의 방문이 생각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고. 내 시간과 내 공간을 내 뜻대로 조절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내가 집주인이 아닌 것이 가장 불편했던 경험이었다.


아마도, 나는 이번 경험을 잊지 못할 것이고, 앞으로 갖게 될 내 집의 조건이 좀 더 까다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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