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 정말 오랜만에 갈치조림을 했다.
숭덩숭덩 썰어낸 무를 깔고, 육수를 내어 익히다가 감자도 넣어 같이 익혀준다. 무와 감자가 적당히 익었을 즈음, 토막 낸 갈치를 넣어주고 그 위에 미리 준비해 둔 양념장을 골고루 넣어준다. 마지막으로 대파를 썰어 올려준 후, 뚜껑을 닫아 갈치가 익게 해주면 끝.
레시피로 읽을 때는 그토록 단순한 내용이 내가 하면 왜 그리도 복잡하고 어려운 작업이 되는지 모르겠다. 고추장을 1.5 숟가락 넣으라 하는데, 0.5는 정확한 계량이 어려워 대충 넣어버리게 되고. 간장 0.7 숟가락 역시 눈대중으로 넣게 된다. 레시피에 나온 재료 양과 내가 가진 재료 양이 다르기도 하고, 레시피에서 요구하는 채소가 집에 없는 경우도 다반사다. 무와 감자는 적당히 익히라 했는데, 적당히는 어느 정도를 얘기하는 걸까?
일단 하기로 한 것이고, 얼려둔 갈치를 언제까지 계속 얼릴 수는 없기에 필요한 채소를 남편에게 부탁했다. 그리고는 레시피에 나온 양념장을 만들었는데, 양념장 맛이 이게 맛나 싶을 정도로 영~ 이상하다. 그동안 먹어봤던 익숙한 양념장의 맛이 아닌, 아주 새로운~. 뭐랄까 결이 완전히 다른 독특한 양념장이랄까. 분명 넣으라는 대로 넣었는데, 알 수 없는 맛이 탄생된 것이다.
'고추장 맛이 너무 많이 나나?'
엄마의 갈치조림도, 맛집의 갈치조림도 이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싶어, 고개가 갸웃해진다. 뭣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들은 풍월은 있어서 설탕을 조금 추가해 본다. 솔직히 이쯤 되면 설탕 한 스푼에 기대를 걸어보기도 한다. 극적으로 맛있어지길. 기적이 이런 사소한 곳에서 일어난다면, 세상 살 맛 나겠지만 그럴 리 없으니 이번에는 간장과 맛술을 조금씩 더 추가한다. 제발, 이쯤에서 조금이라도 비슷해지길. 하.지.만. 나의 바람은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서로 어울리지 않겠노라 단단히 결심한 양념들은 제 각각의 개성을 뽐내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뭐가 부족하지?'
몇 번의 추가가 이어지다 보면, '에라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어설픈 감독 탓에 신나게 개인플레이를 선보이는 선수들을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주방에서 시선을 돌려 남편의 동태를 슬쩍 살핀다. 식탁 앞에서 듣게 될 혹평에 벌써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이다.
시어머니는 생전에 뵌 적이 없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음식 솜씨가 워낙 좋았고, 그 솜씨를 둘째 고모가 그대로 물려받았다 했다. 둘째 고모의 음식 솜씨는 정말 좋다. 그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자란 남편의 입은 맛없는 음식에 관대하지 못하다. 나 또한 친정엄마의 음식 솜씨가 정말 좋았다. 뚝딱 뚝딱 만들어내는 음식들마다 최고였다. 김치는 정말 시원하면서 아삭하고, 미역국은 고소하면서 달큰했다. 양념게장을 비롯해 엄마가 만드는 음식들의 대부분이 시판되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그러니 나 또한 맛없는 음식은 싫다. 입맛은 까다로운데 음식 만들기에는 젬병인 1인. 나 스스로가 이토록 안타까운 입장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닫는다.
내가 손맛이 없다는 건 결혼초부터 알고 있었다. 엄마는 뚝딱뚝딱 만들어도 맛있는데, 엄마가 가르쳐준 대로 아무리 해도 나는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비슷한 맛이라도 나면 희망이라도 있겠지만, 비슷한 맛조차 흉내 내는 게 어려웠다. 게다가 한 두 번 반복해서 만든 음식일지라도 레시피를 기억하는 게 쉽지 않았다. 갈비찜은 명절이면 꼬박꼬박 했던 음식이고, 10년 넘게 해 왔지만, 할 때마다 레시피를 찾는다. 맛을 내는 것도 어렵고, 요리에 관심이 가지도 않으니 10번 하던 일이 5번으로 줄고, 5번이던 것이 2~3번으로 줄어든 것이다.
하고 싶지도 않고, 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는 분야에 굳이 나의 노력을 쏟아붓고 싶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아내이고 엄마이기에 집밥에 대한 죄책감은 늘 가지고 있다. 그러니 오늘처럼 뜬금없는 날, 한 번씩 주방을 찾아 음식을 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노력은 종종 한다는 핑계를 대는 중이다.)
육수 안에서 무와 감자가 보글보글 끓고 있는 게 보인다. 이제 뚜껑을 열어 갈치와 양념장을 넣어야 하는데, 맛에 대한 확신이 0%다. 그럼에도 일단 갈치를 넣고 양념장을 풀었다. 그 위에 파까지 넣으니, 시각적으로는 그럴듯한 갈치조림이다. 일단 끓고 있는 육수를 한 숟가락 맛보았다. 양념장만 먹었을 때보다 그나마 먹을만하다. 꼬리조차 보이지 않던 희망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식탁 위에, 있는 반찬 없는 반찬을 모두 털어서 채운다. 갈치조림에 집중되지 않도록, 갈치조림이 아니어도 한 끼 식사는 할 수 있는 상황임을 인지시키기 위한 나만의 노력이라고 해두자. 그렇게 차려진 식탁에 누구보다 가장 먼저 내가 앉았고, 누구보다 먼저 갈치 한토막을 건져 올린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남편이나 아이들이 먹기 전에 내가 먼저 맛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짜지는 않은데."
"안 짜다고 했잖아."
국물 맛을 먼저 보게 했던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남편이 국물 한 숟가락을 떠먹고, 갈치 한 조각을 입에 가져가는 대로 나의 시선이 따라간다. 이럴 때마다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기다리는 수험생이 된 기분이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맛없다 소리만 안 나와도 나름 선방했다 생각하자 싶다.
"괜찮네."
맛있다가 아니라 괜찮다다. 맛있지만 않지만 먹을만하다는 이야기다. 맛이 없어도 있는 척하는 건 절대 못하는 성격이니, 이해한다. 신혼 초에는 그런 남편의 반응에 꽤나 속상했더랬다.
"먹을 만 해?"
"응. 맛있어."
남편의 시선이 나와 마주하지 않은 채로 맛있다는 대답이 나온다. 이쯤이면 영혼 없는 대답임이 분명하고, 맛있지는 않다는 게 선명해진다. 나의 입맛에도 그닥 맛있지는 않았으니, 남편의 영혼 없는 말에 불만은 없다. 배달 음식을 하루 안 시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이냐 싶고, 아이들에게 집밥을 한 끼 먹일 수 있음에 안심할 뿐이다.
"엄마, 맛있어. 하나도 안 짜고 맛있어."
아빠의 시큰둥한 반응이 내심 신경 쓰였는지, 큰아이가 활짝 웃으며 얘기한다.
"정말?"
"응. 맛있어."
"다행이야. 얼른 먹어."
두 아이가 모두 각자의 밥을 깨끗하게 비워냈다. 솜씨 없는 엄마 음식에 대한 응원을 이렇게 표현해 주는 건가 싶어 고맙기도 하다. 잔뜩 움츠려졌던 나의 어깨도 조금은 펴지는 기분이다.
"잘 먹었습니다. 엄마 최고."
자신이 먹은 그릇과 수저를 치우면서 작은 아이가 크게 외친다. 아이 목소리에 굳었던 표정도 맑게 펴진다. 음식 하는 날이면, 언제고 쪼그라드는 나 자신이었지만 아이들의 응원이 있어 종종 노력하는 시간을 갖는 것 같다. 음식 하는 날 뿐만 아니라 모든 날에, '아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엄마.'라는 걸 느낀다. 내가 키우고 있다 생각했던 아이들이 나를 키우고 있는 것 같은. 나의 사랑보다 몇 배 따뜻한 사랑을 표현해 주는 아이들이 있음에, 그런 아이들의 엄마라는 것에 정말 감사하고, 감사하다. (남편에게도 감사한다.)
언제일지 모르겠으나, 정말 맛있는 음식을 우리 아이들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날이 있길 기대해 본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