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건조기가 들어온 건 5년 전의 일이다. 9kg 건조기가 주부들의 로망템이 된 지 오래였고, 이제 막 14kg 건조기가 나오기 시작하던 때였다. 누구는 건조기가 필수템이라 했고, 누군가는 건조기가 무슨 필요냐 지적했다. 나 역시 후자의 입장이었다. 건조기에 돌린 옷들이 줄어들어 못 입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왜 그런 걸 쓰나 생각했다. 솔직히 건조 기술력에 대한 신뢰도 부족했다.
그러다 누군가의 선물로 우리 집에 14kg 건조기가 들어오게 되었다. 다용실 한편을 묵직하게 채우는 건조기가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선물을 주는 이도, 선물이라 하기에 비싼 건조기의 가격도, 나에게는 부담이었다. 다용도실이 좁아지는 것도 솔직히 별로였다.
"한 번 써보세요. 써보기 전에는 다들 마음에 안 들어하시는데, 쓰고 나면 없으면 안 된다고 해요."
"아. 그래요."
설치하는 중에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인 나에게 설치기사가 전해준 말이었다. 그 말에 반신반의했다. 없으면 안 될 정도는 아닐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랄까. 다 설치된 건조기를 보면서도 그저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다 남편의 권유로 며칠 전 구입했던 수건을 시험 삼아 돌려보기로 했다.
1시간의 세탁, 2시간의 건조 후,
"신랑, 이거 좀 만져 봐."
"건조기 돌린 거야?"
우리 부부는 수건을 만지며 서로를 보고 웃었다. 우리가 알던 부드러움이 아닌 그야말로 저세상 부드러움을 갖춘 수건이었다. 충분히 부드럽다 생각하며 사용하던 수건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랄까. 어찌나 뽀송뽀송하고 부드러운지, 그동안 꿉꿉한 냄새가 난다며 투덜거리던 신랑의 불만도 완전히 사라지던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남편은 건조기 예찬론자가 되었다.
물론 건조기를 돌림으로써 옷이 줄어드는 단점은 분명히 있었다. 다만, 한 사이즈 크게 산다던가, 건조기를 돌려도 괜찮은 옷의 재질을 구입함으로써 단점은 어느 정도 보완할 수 있었다. 다가오는 장마철이 두렵지 않고, 겨울에도 빨래가 빠르게 마르는 장점이 있는데, 그 정도 단점쯤이야. 설치기사가 그토록 당당하게 얘기했던 이유를 충분히 알고도 남음이었다.
이후로 나는 건조기를 선물해 주었던 지인에게 건조기를 다시 선물했다. 역시나 나와 같은 반응이었다. (만족도가 높은 선물이지만, 주고받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선물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건조기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채 5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건조기의 건조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증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날씨가 추울 때마다 생기던 증상이라,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그러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이번에는 수건에서 꿉꿉한 냄새가 났다. 건조기를 샀을 때, 교체했던 수건이니 5년을 사용한 수건이었다. 너무 오래 써서 생기는 일인가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며칠 후, 이번에는 옷이며 수건에서 꿉꿉이 아니라 쉰내가 나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어 수건을 교체하기로 마음먹었고, 냄새나는 옷들은 다시 한번 세탁했더랬다.
1시간. 2시간.. 3시간... 4시간.... 오전 9시에 돌린 수건은 오후 3시가 되어서도 마르지 않았다. 그제야 건조기의 이상을 감지한 나는 서비스센터에 연락을 했다. 대대적인 내부 청소와 부품 교체를 하고 나서야 건조기는 제 기능을 찾았다.
가장 뜨거웠던 지난 2018년의 여름, 에어컨이 고장 났었다. 더위가 절정에 이르던 시기였다. 서비스접수를 신청했지만, 고치는데만 2주 넘게 소요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는 일념으로 선풍기를 안고 살았지만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에 소용이 없었다. 밤에라도 편하게 자자 싶어 호텔을 예약하기도 하고, 낮에는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곳으로 외출을 감행했다. 더위를 피해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2주를 보내면서 에어컨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후로 트라우마처럼 여름에 에어컨이 고장 나지 않을까 걱정했었다.
이번 건조기 고장도 나에게는 굉장히 불편한 일이었다. 단 며칠에 불과했고, 빨래방이란 좋은 대체제가 있는데도 불편함이 아주 크게, 많이 느껴졌다. 건조기의 편리함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어쩌면 앞으로 나오게 될 모든 생활 관련 제품들에 나는 그렇게 중독될는지도 모르겠다. 편리한 건 너무나 좋으니까. 다만, 아무리 좋더라도 뭐든 적당히 했으면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