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그 아이들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2학년때였다. 이사때문에 만나게 된 새로운 인연들이었다. 나도 아이들이 낯설고, 아이들도 나를 낯설어하는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낯설었던 것만 기억이 날 뿐,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는지는 흐릿하다.
중, 고등학교 때는 솔직히 싫었던 친구도 있었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친구도 있었다.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친구는 굽히지 않아서 짜증이 났고, 나름의 배려를 해줬더니 그까이꺼 필요 없다는 친구에 화가 나기도 했다. 덕분에 대학,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그들을 만나기보다 소식을 전해 듣는 정도로 인연을 이어왔다. 그중에는 꼭, 두루두루 친한 녀석이 한 명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각자의 삶과 사투를 벌이며 나이를 먹었고, 각자의 가정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몇몇은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를 해주었지만, 몇몇은 축하는커녕 결혼을 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생각지 못한 큰 위기가 닥쳐왔다. 머릿속에 종양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처음에는 드라마인가 생각했다. 몇 군데 대학병원을 돌며 진단을 받았고,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는 소견을 들었다. 그때까지도 내가 뇌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다양한 걱정거리를 들고 입원수속을 마친 날이었다. 종일 이런저런 검사들을 받고 다니느라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야. 우리 거의 다 도착해 가는데, 얼굴 잠깐 볼 수 있어?"
"어?"
"수술 들어가기 전에 얼굴 좀 보자고 해서."
예상치 못한 등장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환자복을 입은 채 누군가의 병문안을 받아본 적이 없는 1인이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서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뇌수술이란 단어가 갖는 중압감을 그대로 드러내야 할지, 멀쩡히 웃으며 대해야 할지.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30년 지기들이 총총히 서 있는 게 보였다.
"왔다."
소리에 우르르 내 곁으로 몰려오는 친구들의 표정은 생각보다 편안했다. 내려오면서 했던 걱정이 친구들의 표정을 보는 순간,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중에는 자기주장이 강한 친구도 있었고, 배려를 무시했던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과 로비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다들 어릴 적 그때의 수다쟁이가 된 것 마냥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마치 병문안이 아니라 동기 모임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서로가 미리 상의한 후에 이런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려운 수술이긴 하지만, 수술은 당연히 성공할 것이고, 내일 잘 자고 일어나기만 하면 된다는 것 같은. 특별히 말하지 않았는데도 걱정하지 말라는 친구들의 응원이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종일 울렁거리던 감정이 잠잠해지는 게 느껴졌다.
"자, 이거. 우리가 조금씩 모았어. 끝나면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응?"
대화 중에 내밀어진 흰 봉투에 당황스러웠다. 30년 지기들 중에 내 결혼식에 참석했던 친구는 단 한 명이었다. 솔직히 그 한 명을 빼고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 내가 그러했으니, 그들도 나에 대해 별로 궁금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수술한다는 소식을 전할 때, 모두가 놀라는 눈치였지만 그럼에도 병문안까지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고, 봉투를 내밀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야. 이게 무슨."
"그냥. 그냥 좀 받아. 수술 후에 이걸로 몸 보신해. 얼마 안 돼."
금액 따위는 상관없었다. 친구들이 단체 병문안을 왔다는 게 너무 고마웠고, 온 중에 나를 불편하게 여겼을 것 같은 친구들도 있다는 게 신기했다. 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마당에 십시일반 마음을 모았다는 것이 그동안 내가 가졌던 옹졸함에 시원하게 한 방 먹은 기분이었다.
그동안 이들에게 가졌던 온갖 감정들이 복잡하게 엉키는 기분이었다. 주로 내 행동과 내가 가졌던 생각에 대한 반성이었다. 후에 들은 얘기로는 수술 소식을 들은 후로, 친구들끼리 나를 제외한 단톡방까지 만들어 이런저런 걱정들을 나누었다고 한다.
지난 주말, 30년 지기들의 모임이 있었다. 한 동네에 살던 친구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다 보니 모이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코로나 시국까지 겹치면서 친구들을 만날 기회들이 점점 줄어들었고, 최근에 만난 것도 1년이 훌쩍 넘어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모이자 하면 기꺼이 합류해 주는 친구들이 좋다.
30년 지기들의 수다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즐겁고 신난다. 찌질했던 과거의 모습도 웃음이 되고, 현재의 상황도 웃음이 된다. 술 한 잔 마시지 않고도 장장 5시간의 수다를 이어간다는 건, 그만한 친분이 없지 않은 이상 불가능한 일이니까. 그날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다 눈가에 잡힌 주름으로 내가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에게 30년 지기 친구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