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리 얘기해 두자면 음식 카레가 아닙니다.
어릴 적, 우연히 믹스견이 우리 집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 엄마가 누구인지, 아빠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알 수 없으니, 언제 태어났는지도 알 수 없었다. 동그란 눈망울을 깜빡거리며 상자 안에서 나와 눈이 마주치던 누렁이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해 보니 누렁이가 사라지고 없었다. 누렁이가 살았던 작은 상자도 치워지고, 물그릇도 없어졌다. 낑낑거리는 소리나, 부스럭거리며 움직이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싸한 느낌이 목덜미까지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지는 찰나, 엄마가 옷을 툭툭 털며 집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엄마, 누렁이가 없는데?"
"죽었어. 지금 뒷산에 묻어주고 오는 길이야."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침까지도 멀쩡해 보이던 누렁이가 어떻게 갑자기 죽을 수 있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누렁이가 죽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누렁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한 마음만 남아있다.
당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살면서 '개'를 키워보겠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없다. 특히나 요즘같이 '개'가 아닌 '반려견'으로 만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키울 자신이 없었다. 그저 방송이나 영상으로 보는 반려견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고 넘어가는 정도가 나에게는 딱 맞았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큰아이의 요구를 한 해, 한 해 물리치면서 지금껏 잘 버텨왔다 생각했는데, 잠시 방심한 틈을 타 결심이 호로록 무너지고 말았다.
카. 레.
큰아이를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어대기 시작하는데, 그 모양새가 정말 헬리콥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모양새와 비슷했다. 마치 200%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같달까. 한참 카레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동해지는 게 느껴졌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 자리에 있던 남편과 큰아이는 간절한 눈빛으로 나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었다.
"나 자신 없어."
"엄마, 내가 다 할게. 씻기고, 먹이고, 산책시키고. 내가 다 할게."
"너 학교 가고, 아빠 일 가면?"
"내가 진짜 잘할 수 있어."
큰아이의 약속은 믿을만하다. 책임지겠다고 한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성격이라는 걸 잘 아니까. 그럼에도 선뜻 용기가 안 났다. 그렇게 10분, 20분, 30분...
"데리고 가자."
그렇게 카레는 우리 집의 일원으로 거실 한쪽에 터를 잡았다. 울타리 근처를 걸어가기라도 하면 쏜살같이 달려와 꼬리를 흔드는 녀석은, 키우기 걱정하던 내 마음도 사르르 녹이고 있었다. 배변훈련도 안 된 아기라 여러 가지 걱정을 많이 했던 터였는데, 알아서 배변판 위로 올라가는 것도 신기했다. 낑낑거림도, 짖는 것도 카레는 거의 하지 않았다.
두 아이들은 카레가 오는 날부터 책임감이 발동했는지, 알람을 맞춰놓고 카레 먹이를 챙길 정도였다. 배변을 하자마자 달려가 깨끗하게 치워주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씻기고, 먹이고, 놀아주는 것에 진심인 두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나의 결정에 후회하지 않겠구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