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 당신, 인생 이렇게 될 수 있다?
트럼프가 일으킨 관세 대란, 전 세계 나라들은 우왕좌왕 관세를 붙였다 뗐다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 중이다. 증시가 폭락하고 환율이 요동친다. 당당히 싸운다더니 협상하자며 슬쩍 꼬리도 내린다. 이 와중에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앞날은 고사하고 오늘 당장 뭐를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상상해 봤다. 만약 모든 나라가 진짜 관세를 50%씩 물리는 세상이 온다면, 내 일상은 어떻게 바뀔까?
동네 신발가게 말표 운동화가 10만 원이고, 아디다스도 10만 원이라면 관세 붙으면 아디다스만 15만 원 되는 걸까? 그럴듯하지만 그렇지 않다. 말표 공장은 베트남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를 옮겨 온 것 같은 오지 깡촌에 있는 오일장에 가서 기차표 검정고무신을 사면 관세로부터 해방될까? 그렇지도 않다. 고무는 태국에서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세라는 건 ‘국산은 괜찮고, 외국산은 비싸진다’는 단순 공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부품들과 그들의 원산지, 생산 공정, 관세 적용 협정, 심지어 관세 핑계로 슬쩍 가격을 따라 올리는 일부 국내 생산자의 심술까지 따져야 한다. 오죽하면 관세 시뮬레이션은 슈퍼컴퓨터로 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 그러니 나 같은 일반인이 관세 얘기하며 아는 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그럴 기분도 아니다. 그래서 그냥 아무 이론도 없이, 일단 상상부터 해봤다. '진짜 그런 세상이 온다면?' 하는 마음으로.
관세 50% 세계가 된 지 몇 년 지난 20땡땡년 (2030년 정도라고 해 두자.) 평일 아침. 다행히 아직은 인공지능 해고자 명단에 안 들어가 지금도 중산층 월급을 받고 있는 나. 현재 집세는 어떻게 저떻게 내고 있다.
6:30 A.M. 좋아하는 신선한 딸기를 썰어 넣은 요구르트와 직접 내린 커피를 먹는 아침은 구경한 지 오래. 오늘도 밥에 달걀 한 알, 간장 한 숟가락. 딸기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 딸기는 봄에, 한 달에 한두 번 먹는다. 여름은 수박, 복숭아, 포도 같은 국내산으로 연명하고, 가을엔 사과가 전부다. 겨울엔 과일 없다. 귤은 좀 있는데 값이 엄청나다. 뭐, 조상들도 이렇게 살았다. 수천수만 년 동안. 사실 이게 동물 호모 사피엔스의 본모습이려니 생각한다. 그래서 그런가 괴혈병 같은 건 안 걸린다.
그래도 커피는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전엔 맛있는 커피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도구빨에 열을 올린 적도 있었다. 커피 커뮤니티도 여러 군데 가입해 있었다. 그때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에서 “무엇을 사야 하고, 무엇을 사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 열띤 공유가 오갔다. 산 것을 자랑하고 장단점을 비교하며 어디 가면 싸게 살 수 있는지 실시간으로 서로 알려줬다. 실로 홍익인간의 쇼핑 정신이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은 있겠지. 나보다 연봉이 세 배쯤 되는 사람들. (너무 적게 잡았나?) 그들이 어디서 뭘 마시고 뭘 쓰는지 이젠 모른다. 예전에는 인스타그램만 봐도 훤히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소식이 없다. 부자들은 부자들끼리만 노는 커뮤니티가 따로 있다고 한다. 과거에 백만장자들이 자동차며 서랍 속 옷장 속을 다 공유하던 옛날이 오히려 신기하다.
7:30 A.M. 지금은 지하철 안. 일곱 시 차를 타야만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다. 사람이 많다. 요즘 자가용 타는 사람 없다. 나도 전엔 차로 출근했다. 그런데 내 차가 너무 오래돼 잔고장이 잦고, 부품 구하는 데 몇 주씩 걸린다. 결국 차를 세워두고 지하철로 바꿨다. 세 번 갈아타고, 역에서 회사까지 20분 걷는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막상 해보면 또 살 만은 하다. 아까 말했듯이 호모 사피엔스는 원래 처음부터 차 타고 태어나는 동물이 아니다.
전에는 지하철 안에서 영화도 보고 유튜브도 봤는데 요즘은 지하에선 인터넷이 그렇게 빵빵 터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 8년 된 전화는 너무 느려서 동영상 보는 건 언감생심. 그냥 눈을 감고 있는다. 사람이 하도 많아 흔들리지도 않는다.
8:50 A.M. 회사 도착, 업무 시작하려는 데 회사 인터넷이 또 굼벵이. 요즘은 통신망 회사들도 장비 보수를 제때 못 한다. 고장은 잦고, 고쳐지는 속도는 느리다. 엔터 누르고 어깨 스트레치 한 번 했는데 아직도 로딩 중이다.
10:00 A.M. 외국 바이어와 화상회의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회의 한 번에 끝내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나라들이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 나 있다 보니, 콘텐츠 전송망조차 제재 대상이다. 내가 쓰는 화상회의 툴도 해외 서버를 몇 번씩 돌아오다 보니, 화질은 흐리고 음성은 뚝뚝 끊긴다. 이메일 첨부 파일도 잘 안 열린다. (그 와중에 피싱 사기꾼은 더 늘었다.)
요즘엔 그냥 팩스를 쓰는 게 속 편할 때도 있다. 결국 우리 회사도 팩스를 다시 달았다. 그나저나 팩스로 광고 보내는 사람들 좀 잡아서 벌주면 좋겠다. 종이값 비싼 건 차치하고 구하기도 힘들다.
12:30 P.M. 점심 도시락 시간. 오늘은 유튜브에서 본 레시피로 만든 특제 두부 반찬을 싸왔다. 요즘 두부는 고급 반찬이다. 콩값이 너무 올라서. 채식 유행도 한몫한 것 같다. 덕분에 두부 요리 레시피는 넘쳐나 질리지 않게 먹을 수 있어 좋다. 도시락 김은 국산이라 그나마 매일 챙긴다. 다행.
식후 커피는 자판기. 나랑 친한 커피 마니아 동료가 에디오피아산 예가체프 커피 밀수 들어왔다고 귓속말을 건넨다. 500그램에 15만 원. 싸다! 정식 매장에선 30만 원 넘는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즘 밀수 하는 사람들 정말 많다. 출장 많은 직장인도 한다고 한다. 남대문 도깨비 시장이 부활했다. 그냥 가면 당연히 못 산다. 확실한 커뮤니티를 통해 뒷문으로 가야 한다. 내 친구는 그렇게 뉴발란스 574를 28만 원에 샀다. 정가 40만 원. 나도 고민 중이다. 내 운동화 7년 신었다. 작년에 집 앞 구두수선집에서 밑창을 갈았는데 태국산 고무라서 5만 원이나 냈다. 그런데 또 뚫어졌다.
6:00 P.M. 오늘은 웬일로 정시 퇴근이다. 좋아하는 감독의 신작이 개봉했다. 외국 영화라서 표값이 좀 나간다. 5만 원. 그래도 본다. 며칠 두부 안 사면 되니까. 이런 재미도 없는 게 인생이랴?
10:30 P.M. 우리 아파트는 작년부터 에너지 절약 정책으로 밤 10시부터 난방이 꺼진다. 추워지기 전에 재빨리 샤워하고, 침대 속으로 들어간다. 영화가 꽤 괜찮았다. 다른 사람들 리뷰가 궁금해져서 검색을 해본다. 그런데 인터넷이 너무 느려 포기한다. 소설이나 볼까 전자책을 꺼낸다. 이것도 십 년 돼서 껌벅껌벅한다. 그냥 자야겠다.
11: 34 P.M. 아차, 고양이 모래 안 갈았다. 일어나서 모래를 치운다. 고양이 유지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저 놈이라도 없으면 내가 무슨 재미로 살겠나.
2025 현실 복귀 타임. 그냥 상상이다. 독자 여러분 (만일 계시다면), 너그럽게 봐주시길. 이거 틀렸다 저거 틀렸다 하지 마시라. 나도 내가 틀렸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