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 내 자아의 수호자? 아니면 파괴자?
요사이는 전 세계 어딜 가나 트럼프에 대해 말들이 많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훨씬 전부터 그가 행정명령을 통해 밀어붙인 극단적인 정책들 때문에 많은 미국인들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그의 국정 운영 방향이나 방식에 대한 불만도 당연히 많다. 사실 트럼프는 그런 계획들을 숨긴 적이 없다. 그러겠다고 대놓고 말했던 걸 지금 극단적인 방법으로 실행하고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이런 조짐이 있었음에도, 알다시피 많은 미국 사람들이 그를 선거에서 확실하게 밀어줬다. 원래 공화당 지지층을 훨씬 넘어 중도층이나 민주당 이탈층조차 그의 존재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표를 주었다.
존재감. 그렇다. 그는 부정할 수 없는 카리스마가 있다. 그렇지만 그는 약점이 많은 사람으로 보인다. 자아도취적이고 즉흥적이다. 백만장자지만 파산도 여러 번 했고, 이런저런 불법도 저질렀다 한다. 솔직히 내가 저리 행동했다간 내 평판은 바닥이요, 직장도 벌써 잘렸을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잘못해도 욕먹는 나와는 달리, 일주일 전 조사에 의하면 정책은 실망했을지언정, 트럼프 본인에 대한 지지는 90%가 넘는 사람들이 철회하지 않고 있다 한다. 그들에게 트럼프는 이쁜 털이 깊이깊이 박힌, 내겐 너무 이쁜 당신이다. (관세로 전세계가 들썩인 지금은 조금 달라졌는 지 궁금하다.)
트럼프는 아이돌?
트럼프 1기 때의 몇 가지 말썽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2기 단 석 달 만에 끓어오르는 불만의 수위를 생각해 보면 그 와중에도 식지 않는 트럼프라는 사람에 대한 변함없는 지지는 정말 대단하다. 왜일까? 수많은 학자들과 똑똑한 사람들은 소외된 백인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트럼프의 식지 않는 인기의 원천으로 설명한다. 한다면 하는 트럼프를 보면서, 과거에는 번성했으나—지식인, 엘리트계열의 농간으로—지금은 형편없이 쇠퇴한 산업의 노동자들은 트럼프를 화끈하게 세상을 바꿔줄 사람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트럼프의 일견 해괴한 말과 행동은 그의 저돌적인 추진력의 증거, 기존의 사악한 엘리트 계층과 완벽히 다름의 증명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평소엔 아닌 척하다가 투표장 장막 뒤에서 트럼프 이름 밑에 도장을 꾹 찍는 평범한 범생이들의 트럼프 짝사랑의 유래는 설명할 길이 없다. 자신에게 직간접적으로 불리할 수 있는 정책들을 공약으로 내거는 데도 트럼프가 왠지 더 희망적이고 믿음이 간다고도 했다. 공약은 별로지만 그래도 트럼프를 믿고 찍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닌 것은 이미 투표 결과가 말해주고 있지 않나? 이쯤 되면 정치학, 사회학적 이론을 넘어서서 트럼프는 마치 스타 배우, 스타 가수들만이 갖는 신비하고 엄청난 인간적 매력을 갖고 있는 것임이 틀림없다. 숫자와 글자로 표현하지 못하는 영역, 우리 뇌의 동물적 영역에서 인식하는 트럼프의 매력. 과연 무엇일까? 여기 나의 썰을 풀어보고자 한다.
주변을 돌아보자. 지금, 세상은 진짜 막 돌아간다. 극단화되는 정치, 여기저기서 터지는 전쟁도, 피부로 느껴지는 기후변화도, 나만 늘 돈 없는 경제도 불안하다. 놀고 싶은 것 꾹 참고 하라는 공부 열심히 했고 간신히 대학 졸업했는데 학자금 대출은 산더미고, 월급은 쥐꼬리다. 게다가, 세상에나! 인공지능이 대체할 직업 명단에 내 일자리가 떡하니 위에 올라와 있다. 난 성실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한다. 근데 잠깐 쉰다고 유튜브 좀 보다 보니 아뿔싸! 어느새 세 시간이 날아갔다. 나만 뒤처지는 거 아냐? 살아남아야 되는데, 난 지금 벼랑 끝에 한 손으로 매달린 기분이다.
“아, 제발 누가 나 좀 살려줘요!”
버전 1
정신이 번쩍 든다. 우리 뇌, 특히 생존본능을 관장하는 파충류의 뇌는 이런 순간에 특히 예민해진다. 이 정도의 위협을 감지하면, 이 뇌는 계산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말한다. 살아남자!
이때 내 앞에 세 사람이 나타난다.
한 명은 인자한 얼굴의 할아버지. 삶의 경험이 쌓인 현자의 눈빛으로 말한다.
"괜찮아, 우리는 서로 도와야 한다. 난 산 많이 타봤어. 내가 짚을 곳을 찾게 도와줄게 힘내서 함께 가자."
말은 따뜻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 어르신, 힘은 있을까?
다른 한 명은 또렷한 말투와 야무진 눈빛의 여성 법조인.
희망, 정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며 나에게 손을 내민다. 똑똑한 티가 난다.
"난 이 산 지리 잘 알아. 이 쪽으론 올라올 수 있고, 저 쪽으론 내려갈 수도 있지. 미끄러운 곳을 조심해야 돼. 희망을 가지고 한 걸음 씩 해 봐.”
그럴듯하긴 한데, 모르겠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그리고 마지막, 거구의 남자가 등장한다. 어깨도 엄청 넓다. 금발을 휘날리며, 굵고 낮은 목소리로 외친다.
"야! 이리 와. 손잡아 줄게."
"그쪽은 나무가 있어서 못 올라가요."
"뽑아버릴 거야."
"천연기념물 나무예요."
"천연기념물? 개나 줘. 다 정부 도둑놈들의 개수작이야"
앞의 할아버지와 법조인은 말한다.
“그 사람 말 듣지 마, 그 사람 산적이야. 내 손 잡아. 내가 구해줄게. 저 사람은 사람 구할 능력도 아예 없어.”
손이 아파온다. 힘이 빠져간다. 잔소리 들을 때가 아니다. 이번에는 공포와 애착반응을 관장하는 뇌의 변연계가 판단한다. 크고 굵은, 힘세보이는 손을 재빨리 움켜 잡는다.
“이 산에서 안전하게 내려갈 때까지 이 힘센 형님을 놓치지 말자. 이 중 제일 힘세고 능력 있어 보이는 그를 산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야말로 사기꾼 들 같다. 배운 척, 선한 척하지만 뒤에선 남 욕하는 사람들. 왜 저러고 사나?”
이젠 힘센 형님 그가 무슨 짓을 해도 무슨 말을 해도 그를 버릴 수 절대 없다. 그는 이 험한 곳에서 나를 살릴 유일한 사람이다. 그의 듬직한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나는 이제 살았다. 저 사람은 나를 산적들과 들짐승들에게서 구해줄 것이다. 좀 무식해 보여도 나는 그를 믿는다. 흠 없는 사람 있나? 저 노인과 저 여자를 보라. 세상엔 저런 거짓말쟁이들이 우글거리지 않나? 이 사람은 늑대가 나타나면 나와 같이 목숨 걸고 싸울 것이다. 우린 동지다. 뼛속까지 한 편이다. 이 힘센 형님은 내 구원자다. 내 마음속엔 그를 향한 이쁜 털이 깊이깊이 박혀 버렸다.
눈치챘다시피, 할아버지는 바이든, 여인은 해리스, 금발 남자는 트럼프다. (모발색이 다양한 문화권에서 본능적으로 금발이 선호된다고 해서 일부러 언급했다.). 당신은 누구에게 손을 내밀겠는가? 만일 이 이야기가 전혀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면 끝까지 읽어달라.
버전 2
자! 이 상황이 싫은 당신을 위해 이번엔 버전 2를 생각해 보자. 아까 그 절벽으로 돌아가자.
“난 아직도 절벽에 매달려있다. 그런데 난 깡패 같아 보이는 저 노랑머리 이상하게 싫다. 덩치만 컸지 뻔뻔스러워 보이는 저 사람.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선 저런 자를 제일 조심해야 한다. 설사 떨어져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날 구멍이 있는 반면, 저 자를 따라가면 나는 보따리도 뺏기고 죽임을 당할 것이 분명하다. 저 할아버지나 저 여인의 말이 아니어도 내 눈에도 저 자는 날도둑놈이다. 증거는 차고 넘친다. 차고 다니는, 남을 때리는 데 수십 번은 족히 쓴 것처럼 보이는 저 몽둥이를 보라. 가방에 든 수상쩍은 비싼 물건들, 훔친 물건임에 틀림없다. 말투도 완전 깡패 아닌가? 그가 말한 천연기념물 따위, 정부 따위라는 현체제를 부정하는 메시지는 곧 내게 법 따위는 없다. 까불지 마라, 너도 수틀리면 죽는다로 들린다. 순리를 따르는 할아버지와 여인의 손을 잡고, 서로 도우며 발 디딜 돌은 찾고 붙잡을 곳을 찾으면 당연히 살길은 뚫린다."
버전 2의 사람들에게는 그러잖아도 미쳐 돌아가는 삶의 스트레스로 허덕이는 마당에 트럼프 같은 무법자까지 나타나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뭘 잘못해서 내 인생에서 저런 험한 놈까지 만나야 한단 말인가. 정신 차리자, 급할수록 돌아가자. 이들은 동물적인 변연계보다 이성을 관장하는 전두엽이 먼저 반응한다. 감정보다 원칙, 힘보다 공존을 먼저 생각하고 규범과 질서, 도덕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들에겐 그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다. 그래서 트럼프가 보여주는 동물적이고 미치광이 같은 리더십은 그들에게 문명에 대한 조롱, 혹은 자신이 힘들여 쌓아 올린 사회적, 도덕적 정체성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진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단지 정치적 반대자라서가 아니라, 그가 내 세계의 기본 원칙을 부정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트럼프도 기가 막힌데 그를 대놓고 신봉하는 이웃 사람들, 몰래몰래 찍고 오는 직장 동료들. 그를 찬양하는 소셜미디어 포스팅들과 거기에 붙은 수 천 개의 "좋아요." 도대체 이게 뭔가? 인간의 지성, 인간의 선함. 모든 것에 회의가 든다. 이건 꿈인가? 그래서 그들은 트럼프라는 이름을 듣기만 해도, 그런 그가 이 세상에 나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명치끝이 답답하고 울화가 치민다. 이 세상은 진짜 살 가치가 있는 가?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트럼프. 그건 이성적 증오가 아니라, 존재론적 불쾌감이다.
당신은 버전 1 인가 2 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