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받지 못한 나의 가치

검증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찾는 것

by 프린스턴 표류기

나는 한 때 종신트랙 조교수타이틀을 단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고, 나에게 친절했다. 하지만 내가 종신직을 따지 못하고 대학을 떠나자 그들은 모두 사라졌다. 세상이 이렇다고들 하더니 정말이구나. 놀랍지 않았다.


나는 교수 대신 교사가 되었고, 요리에 몰두했다. 그냥 레시피를 따라 요리하는 게 아니라 문헌을 뒤져 조리 과정의 물리, 화학적 원인을 탐구했다. 내 나름대로 정통 레시피, 귀한 재료를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가끔 피아노도 쳤다. 안빈낙도 (安貧樂道)의 행복을 느꼈다.


빵도 굽고 잼도 만들고 커피도 손으로 내려먹었다.


이러는 사이 물가는 천정부지로 오르고 나의 연금과 의료보험은 야금야금 불리하게 변해갔다. 내 연금이 몇 살에 고갈되나 계산해 보았다. 아뿔싸!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과연 은퇴를 할 수나 있을까? 사정이 이러한데, 세상 번민 시름없이 요리에 몰두하고 피아노를 쳤다니. 나는 내가 백만장자인 줄 착각한 것 아닌가.


나는 아마존 셀러가 되기로 마음먹고 마케팅 북을 몇 권 사서 보았다. 실험실 샌님이었던 내게 마케팅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었다. 돈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지도 모르고 경멸하거나 무시했던 내 자만심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팔지는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아마존 탐험은 흐지부지 되었다.


마케팅 공부로 무장한 내 눈에는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문득 종신교수가 되지 못한 나를 떠나간 많은 사람들이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거기엔 집단적 흐름이 있었다. 이건, 개인의 얍삽함으로 설명하면 안 되는 집단 심리의 영역이다.


그들은 처음에 왜 내게 다가왔으며, 왜 떠났을까? 서로를 믿을 수 없는 현대 사회. 나는 사람들에게 교수 임용이라는 경쟁 검증의 문턱을 넘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당연히 나를 똑똑한 사람,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봤을 것이다. 나는 내가 속한 대학의 이름이 주는 강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계약이 해지되어 대학을 떠났을 때, 나는 아무런 브랜드가 없는 무명인으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믿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사람들이 붙어 있을 이유가 없다.


아카데미상 수상, 황금종려상 수상 사실이 그 영화를 보기로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받는 내가 나를 버린 사람들의 행동을 흉볼 이유는 하나도 없다. 내가 인복이 없어서도, 세상이 사악해서도 아니다. 나는 나라는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브랜드화’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을 브랜드화할 것인가? 나는 공장에서 물건을 떼다 아마존에다 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그쪽으로 너무나 준비가 없었다. 샌님이 갑자기 장돌뱅이가 될 순 없다. 나는 내가 당장 남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잘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 인간이 인간을 볼 때는 ‘장점’으로 분류되지 않는 부분에서도 좋은 점을 찾아내는, 감정과 직관이라는 영역이 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노력하는 모습만으로도 사람들이 나를 다시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기계의 눈은 더욱 가차 없다. 나를 설명할 객관적 데이터, 브랜드가 없는 나는 ‘없는’ 사람이다.


인공지능 기계와 살아갈 미래에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최대화하여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현실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조차 버겁다. 하지만 나는 한다면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계가 관리하는 세계에서 인간의 존재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