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피아노 선생님은 왜 자꾸 잡담을 하실 까?

어른 학생이 피아노 레슨 받으면 생기는 일

by 프린스턴 표류기

어른이 돼서도 피아노 레슨을 받은 적이 몇 번 있다. 직장 근처에서 제일 가까운 곳을 찾은 적도 있지만 대개는 알음알음 좋은 분을 찾아갔었다.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들은 좋으신 분들이었다. 그런데 공통적으로 수업시간에 잡담을 많이 하신다는 것, 그게 참 아쉬웠다.


왜 그러실 까? 그때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알겠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니고, 그냥 연습을 진심으로 해보니 보이더라.


가장 중요한 이유: 가르칠 것이 없을 때 선생님은 잡담을 한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 나 실력도 별로인 아마추어인데 가르칠 것이 없다니?


누군가를 가르쳐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기말고사 직전에 찾아와 무엇을 공부할까요 묻는 학생, 무작정 제가 무엇을 해야 하나요? 묻는 직장 후배. 말문이 턱 막히지 않나? 질문이 모호하면 우리는 답을 할 수가 없다.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가르쳐 줄 수가 없다.


유튜브에서 마스터클래스나 강의 영상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우리 귀에는 거의 완성된 것처럼 들리는 학생의 연주에도 선생님들이 줄 수 있는 조언과 충고가 정말 많다. 아니, 잘 치는 학생일수록 해 주고 싶은 말이 더 많을 것이다.


내가 준비가 제대로 안 된 채 멍하니 앉아 있었으니 선생님 입장에선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터. 선생님이 내게 잡담을 하신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래서 얘긴데 내가 다시 레슨을 받을 기회가 되면 나는 이렇게 할 것 같다.


1. 곡에 대하여 공부를 한다. 요새는 인터넷에도 좋은 정보가 많다.

2. 책의 음표, 쉼표, 음악기호를 한 개도 무시하지 않는다. 특히 손 편한 대로 대충 치지 않는다.

3. 손가락번호를 잘 정하고 일관성 있게 연습한다.

4. 자꾸 틀리는 부분은 “반드시” 극복한다. 붓점, 반붓점, 묶기, 스타카토, 양손 바꾸어 연습, 거울 연습 등의 방법을 활용한다.

5. 선생님이 느리게 치라면 느리게 치고 양손 따로 하라면 따로 한다. 프로들도 하는 연습이다. 겉멋 들지 말자.

6. 꼭 하라는 건 아닌데 전공자들은 여기서…라는 말을 귀담아듣는다. 음악 전공생도 하는 일이라면 우리 아마추어 들은 더욱더 해야 한다.

7. 구체적인 질문을 준비한다.


덜 흔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이유: 선생님들은 외롭다.


오래전 피아노과를 다니다가 우리 과로 옮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피아노에 선망이 있었던 나는 실험실에서 밤도 주말도 없이 일하는 우리 전공이 왜 피아노 치는 것보다 나은지 궁금했다. 답은 간단했다. 외로워서. 음대생은 하루의 대부분을 작은 연습실에서 혼자 보낸다고 한다. 문밖을 나서면 모두가 경쟁자. 오랜 연습에서 오는 크고 작은 부상. 마음과 몸이 아픈 고된 길이라는 것이다.


음대를 나온 우리의 선생님들은 다들 그런 과정을 거친 분들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역시 작은 연습실에서 어린 학생들을 대하는 생활을 주로 한다. 그러다가 어쩌다 말이 통하는 어른 학생을 만나면 얼마나 하고픈 말이 많겠는 가. 그냥 들어드리자. 단, 너무 길어지면 눈치 볼 필요 없이 이제 피아노 치자고 직접 말씀드리면 된다.


과거 나는 이랬다.

1. 스스로 목표를 아주 낮춰 잡았다. 어른이라 어차피 한계가 있어. 대충 연습해도 어른이니까 선생님도 뭐라 못하실 거야. 못하는 것을 스스로 열심히 합리화했다.

2. 연습할 줄도 모르면서 선생님 말씀에 100 % 귀 기울이지 않았다.

3. 용기가 없었다. 선생님께 피아노에 집중하고 싶어요 라는 간단한 말도 못 꺼냈다. 레슨시간이 거의 잡담으로 흘러가도 한마디도 못했다.


후회된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이제는 저러면 안 된다는 걸 안다. 오늘은 내 남은 생의 가장 젊은 날이다. 오늘이라도 열심히 연습하면 된다.


제대로 연습합시다, 우리 같이! 어른도 잘할 수 있어요.


마티스. 피아노렛슨 .jpg Henri Matisse, The Piano Lesson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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