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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나에게 동남아시아 여행이란 여전히 물음표

by 낮은 속삭임

열흘 간의 짧았던 페낭, 쿠알라룸푸르, 그리고 싱가포르 여행이 끝났다. 이번 여행지는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완벽한 선택이었다거나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냐고 물으면 물음표를 그리게 된다. 일단 내 여행의 패턴과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여행을 했어야 했는데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좀 더 오래된 유적, 오래된 이야기와 문화재들이 건네는 이야기에 익숙했던 내게는,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가 가득한 시장이나 음식, 생활방식은 조금 낯선 주제였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재료, 고기 누린내, 생선 비린내 같은 냄새를 지닌 음식을 잘 먹지도 못하는, 소위 입이 짧은 탓에 이 지역의 야시장 음식은 나와는 맞지 않았다. 분명히 매력적인 곳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는 흥미가 다소 떨어진다고 해야 할까. 내가 동남아시아로 배낭여행을 쉽게 떠나지 못했던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다행이었던 것은 현지에서 투어 프로그램에 합류하면서 내가 잘 몰랐었던 사실들은 하나씩 알아갈 수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의 특성, 다양한 종교와 사람들의 특성, 도시의 역사를 읽어보았던 것은 이 여행에서 내게 좋은 경험이었다. 이런 나를 두고 누군가는 '문화사대주의'라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차피 여행은 자신이 가장 매력을 느끼는 무엇인가를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 내게는 그것이 오래된 유적이고 역사였다는 것이었고, 그런 면에서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상대적으로 덜 끌리는 여행지였었다.

혼자서 이곳을 다니는 일은 그리 위험하지는 않았다.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에서도 치안이 좋은 편이라 안전하게 여행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페낭 구시가지를 터벅터벅 걸으며 수박 겉핥기였겠지만 페낭만의 분위기를 즐겼고,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의 아름다움과 대도시다운 북적거림을 간직한 쿠알라룸푸르, 오래된 도시의 역사를 지닌 말라카의 독특한 분위기는 두고두고 생각날 것이다. 체류비가 엄청나게 비싸서 조금 망설여지는 곳이긴 했지만 싱가포르는 깨끗하고 아름다웠으며, 그 좁은 땅덩어리에서 창출해 낸 부와 아름다움에서 싱가포르의 자존감을, 그리고 선진국으로서의 그 자부심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다만, 다른 모든 일들이 그러하듯이, 여행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 나에게 동남아시아 여행이란 여전히 물음표였고 그래서 아직도 잘 모르겠는 것이 너무나 많다. 다음번에 다시 이곳에 대한 여행 계획을 세우게 된다면 좀 더 체계적으로 일정을 세우고 이전에 내가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처럼 지역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정도는 제대로 익히고 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그저 가이드북에만 의존한 것이 아닌, 그곳의 실제 역사와 현재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정도는 익힐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번 여행이 좋았는지 안 좋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조금 어렵다. 언젠가 다시 한번은 가볼 곳이기는 하지만, 글쎄, 나에게 동남아시아 여행이란 여전히 물음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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