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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습하고 더웠지만 푸르른 싱가포르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서 시작하여 싱가포르 플라이어로 마무리

by 낮은 속삭임

싱가포르에서의 나흘째 아침. 내일 아침 비행기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싱가포르의 마지막 날을 기쁘게 즐겨보기로 했다. 하늘은 흐리고 비가 내리려는 분위기에 내가 오늘 선택한 곳은 가든스바이더베이(Gardens by the Bay).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출발하려니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했다. 이럴 땐 편하게 택시를 타는 것으로. 그랩을 불러 타고 가든스 바이 더 베이로 향했다.

2011년에 문을 연 싱가포르의 미래형 정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둥 없는 온실이라 한다. 플라워돔과 클라우드포레스트 입장권을 모바일로 구매했기에 플라워돔 쪽으로 먼저 입장했다. 슈퍼트리 랩소디 쇼를 보았던 외부와 달리 플라워돔은 거대한 실내 수목원이다. 그리고 플라워돔은 23도로 일정하게 유지되기 때문에 쾌적하게 돌아다닐 수가 있었다. 다양한 다육식물, 바오밥나무, 그리고 처음 보는 열대 식물들과 이름 모를 수많은 식물들이 드넓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우리의 설날에 해당하는 중국의 춘절이 다가오는 시기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곳 플라워돔에도 붉은색의 춘절 기념 장식이 가득했다.

플라워돔에서는 '임프레션 오브 모네(Impression of Monet)' 전시 중이었다. 이 아름다운 식물원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전시회였다. 모네의 그림 속으로,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간 느낌이라 해야 할까.

플라워돔을 나와 클라우드 포레스트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니 인공폭포가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냈다. 폭포의 미세한 물보라가 시원하게 다가왔다. 7층 높이의 이 멋진 식물원을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즐거운 경험이다.

이름 모를 식물들이 싱그럽고 아름답게 피어있는 곳을, 공중산책하는 느낌으로 천천히 그리고 기분 좋게 걸어 다니는 일이 이렇게 환상적일 수 있다니. 그래서 싱가포르에 오는 사람들이 이곳을 꼭 들르게 되는 모양이다.

높다란 산책로를 걷다 보면 온실 창밖으로 마리나 베이 샌즈의 멋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싱가포르가 지나치게 인공적이면서도 또 자연친화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풍경이 아닐까.

내내 흐린 하늘에 비까지 흩뿌려지는 날. 클라우드 포레스트에서 나와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시간 보내기. 내일이면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테니 이렇게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슈퍼트리 사이에 연결된 OCBC 스카이웨이 입장권을 샀다. 좀 전까지 약간의 비와 바람으로 잠시 폐쇄되었다가 다행히 내가 올라갈 때는 열렸다. 128미터의 공중 산책로는 생각보다 독특하고 짜릿한 경험을 제공한다. 이국적인 슈퍼트리 그로브의 독특한 풍경과 함께 웅장한 마리나 베이 샌즈까지.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서 나오면서 앞을 보면 마리나베이샌즈를 또 다른 각도에서 만날 수 있다. 정말 독특한 건물이다.

마리나베이샌즈로 들어와 광둥요리 맛집으로 알려진 Canton Paradise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는데 회전율이 좋아서 생각보다 기다리는 시간은 짧았다.

식사를 든든하게 하고 나오니 어느새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헬릭스 다리를 건너 싱가포르 플라이어 쪽으로 갔다. 싱가포르에서의 마지막 야경을, 이번엔 싱가포르 플라이어에서 보는 것으로 정했다. 아무런 계획 없이 찾은 싱가포르인지라, 나흘을 이곳에서 보내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간다는 곳은 그만큼 덜 가보았고 맛있는 음식도 찾아먹지는 못했지만, 내 방식대로 말레이 반도를 즐기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대형 관람차인 싱가포르 플라이어는 천천히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조금씩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로 건물들이 아름답게 불을 밝히고 있다. 건너편에는 가든스바이더베이의 슈퍼트리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어둠이 깊어져가는 시간,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싱가포르 강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마리나베이샌즈 앞의 스펙트라 분수쇼를 다시 한번 구경한다. 지난번보다는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앉은지라, 물보라 맞을 일 없이 기분 좋게 분수쇼를 즐겼다.

이제 숙소로 돌아가 짐을 정리할 생각을 하며 천천히 헬릭스 다리를 건너 멀라이언 광장 쪽으로 왔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멀라이언 앞에서 마리나베이샌즈를 배경으로, 혹은 멀라이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틀에 박힌 아름다움이라 하더라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셔터를 누르지 않을 순 없지.

천천히 숙소로 발길을 옮긴다. 열흘 간의 이 여행, 즐겁고 흥미로운 시간이었지만 또 어떤 면으로는 내가 동남아시아로 자유 여행을 떠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확인했던 여행이었다고나 할까.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한 번쯤 더 찾을 곳이긴 할 테지. 그때까지 말레이반도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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