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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들을 품은 어미개의 포근한 시선

모견도(母犬圖, 16세기 초)-이암

by 낮은 속삭임
모견도(母犬圖,16세기 초)-이암, 국립 중앙 박물관 소장

조선 시대 왕족 화가 이암의 <모견도(母犬圖, 16세기 초)>. 구부정하지만 멋스러운 나무 아래 어미개와 세 마리의 강아지가 있다. 매끈한 검은 털을 지닌 어미개는, 코와 배 부분은 흰털을 지니고 있으며 눈가의 흰털로 인해 가벼운 웃음을 머금은 것처럼 보인다. 어미개의 목에는 술이 달린 붉은 목줄과 그에 매달린 우아한 금빛 방울이 빛나고 있다. 선하고 큰 눈망울의 어미개는 품으로 파고들어 젖을 찾은 두 마리의 강아지와, 등에 걸터앉아 졸고 있는 강아지를 가만히 받아들이고 있다. 다정스러운 눈빛이 새끼를 향하고 있지 않아도 어미의 포근함이 느껴진다. 품으로 기어든 흰둥이는 이미 어미젖을 물고 드러누웠고, 이를 본 검둥이는 그제야 재빠르게 어미의 다리 밑을 지나 젖을 찾기 시작했다. 둘의 식탐과 다르게 웃는 듯 편하게 졸고 있는 누렁이 혹은 얼룩이의 표정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한다.

이 그림에는 독특한 요소가 하나 더 있다. 나무의 몸통과 잎이 만나는 곳에 마치 열매가 열린 듯 낙관이 찍혀있다. 향로 모양의 낙관에는 그의 당호(堂號, 집이나 건물에 특정한 의미를 담아 부여한 명칭)인 '금헌(琴軒)'이, 그 아래 단정한 낙관에는 그의 자(字, 관례를 치르면서 얻게 되는 새 이름)인 '정중(靜仲)'이 찍혀있는데, 이를 연결하여 풀이하면 '고요한 가운데 거문고 소리가 흐르는 집'이라는 뜻이 된다고 한다. 이는 풍류를 아는 왕족의 우아한 낙관에 충분히 어울릴 만한 뜻이 아닐까 싶다. 이 우아하고 품격 있는 낙관은 어미개의 붉은 목줄과 한쌍을 이루어 그림을 멋스럽게 장식하며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세종대왕의 현손(玄孫, 4대 손자를 일컫는 말로 고손(高孫)이라고도 한다. 이암의 증조부가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이다) 이암의 자는 정중(靜仲)이며 후에 두성령(杜城令)을 제수받았다. 이암의 생애에 대해서는 잘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그는 화조영모화의 대가였으며, <인종실록>에 따르면 당대 화가 이상좌와 함께 중종 어용을 추사할 화가로 승정원의 추천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에 대한 독특한 기록 중 하나가 있어서 전한다. 그가 일본화가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일본의 직업 화사가 그의 본관인 전주 '완산'과 자신의 자 '정중'을 결합한 '완산정중(完山靜仲)'이라는 낙관을 보고 오해하여, 그를 무로마치 시대의 화승으로 기록한 탓으로 전해진다. 다행히 이 사실은 일본 메이지 시대 서적 <고화비고(古畵備考)>에 의하여 그가 조선 화가임이 밝혀졌다고 한다. 이암의 한국적인 동물화풍은 후에 김식(金埴)의 <소>, 변상벽(卞相璧)의 <고양이> 등으로 그 전통이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화가 소다츠[宗達]의 강아지 묘법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서울의 국립 중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보와 이미지는 네이버 검색을 참고하고 내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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