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시작은 단순했다
뜬금없이 시작한 나의 걷기 운동 이야기
주말,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TV를 배경 음악처럼 켜두고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딱히 흥미로운 영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습관처럼 그렇게 스마트폰에 매달려 있었다. 사실 주말은 다른 어떤 일을 하기보다는 늘어져 있는 것이 가장 좋은 휴식이기도 하다. 어떠한 계획도 없이 그저 시간을 보내는 것.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게으른 행동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에게는 가장 바라는 휴식의 방법일 수도 있는 것. 그렇게 매번 나의 주말은 지나갔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문화센터에서 배우고 있는 악기 교습이 끝나고 집에 온 그날은 날도 선선하고, 집에서 스마트폰만 보고 있기에는 조금 심심하기도 했으며, 하늘 높은 줄은 모르고 땅 넓은 줄만 알고 자꾸만 늘어가는 몸무게와 둔해지는 듯한 몸의 움직임에 대해 생각하니 좀 걷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방 속에서 고요히 잠들어있는 갤럭시 버즈 프로를 꺼내 귀에 끼고 아파트 뒤편 산책길로 나갔다. 아파트 뒤쪽 산책길은 많은 사람들이 운동삼아 걸어 다니는 길이다. 익숙한 음악 소리에 맞춰 한발 한발 걷기를 한 시간쯤 했을까. 배가 고프다. 저녁을 먹지 않은 상태로 나왔으니 배가 고플 수밖에. 걷기를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9층인 우리 집까지 엘리베이터를 포기하고 계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당연히 배는 더 고프다. 운동이라는 명목으로 걸어 다니고 왔으면서 밥을 많이 먹을 수는 없었기에, 이전에 사 두었던 아몬드 브리즈 오리지널 190 ml에 퀵오트밀 40 g 정도를 넣었다. 오트밀이 간신히 잠길 정도로 아몬드 브리즈를 넣고 약 1분 정도 전자레인지에 데운 후, 나머지 아몬드 브리즈를 넣으면 생각보다 맛있는 오트밀 죽이 완성된다. 의외로 우리나라 반찬과도 잘 어울리는 이 오트밀 죽은 꽤 좋은 편이다. 그리고 바나나 하나를 먹으면 괜찮은 식사가 된다. 이날 걸은 거리는 약 5킬로미터 정도였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걷기 운동을 내 생활에 들이게 된 날이었다.
다음 날 퇴근 후 뒷정리를 끝내고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후 걷기에 나섰다. 어제보다는 조금 더 많이 걸은 날이었다. 약 6킬로미터쯤 걸었을 때 어제처럼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돌아오는 길, 아파트 9층은 당연히 걸어서 올라가는 코스가 되어버렸다. 셋째 날도 늘 같은 길, 같은 코스를 걸었는데 사흘째라고 운동량이 조금 늘어났다. 이번엔 7킬로미터 정도 걷게 되었다. 퇴근 후 만보 걷기라며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어쩌다 보니 퇴근 후 만보는 당연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평소에 하지 않았던 것을 했던 탓일까. 다음 날은 다시 5킬로미터 정도에서 힘이 부쳤다. 그래서 정리를 하고 9층까지의 계단도 천천히 걸어 올라왔다. 단지 휴일이면 악기 연습하는 것 이외에는 늘어져 있거나 스마트폰만 보고 있는 것이 답답하여 시작한 걷기. 아마 익숙지 않은 일정이 생겨서 몸에서 시위를 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기왕 시작한 것, 칼을 뽑았으니 무라도 베어보자고. 그런데 날씨가 오늘은 쉬라 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실 밖으로 보이는 산이 뿌옇다. 황사가 심하게 찾아왔다. 스마트폰 일기예보를 보니 미세먼지가 최악이다.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릴 때는 KF94 마스크를 쓰고도 잘 다녔지만, 마스크를 벗고 지낸 이후로 마스크를 끼고 한 시간 반 이상을 걷는다는 것은 이제 너무나 답답하다. 그래서 며칠 만에 걷기를 잠깐 접고 쉬기로 했다.
주말 내내 황사가 기승을 부리고 미세먼지 때문에 환기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 걷기 운동을 하면서 맑은 공기만 마실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내가 주로 걷는 길은 차가 다니는 큰길을 조금 걸어 내려간 다음 샛길로 접어들기 때문에 자동차의 매연도 적당히 마시면서 걸어야 하니, 여기에 미세먼지까지 더할 수는 없는 일. 어쨌든 황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황사가 잦아드니 비가 살짝 내리고 그리하여 또 걷기 운동은 미뤄졌다.
퇴근하고 집으로 오니 오늘은 날씨도 괜찮고 바람도 적당했으며, 비 내린 후라 공기도 좋은 편이었다. 오늘은 새로 산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용해 보기로 했다. 갤럭시 버즈 프로는 음질 좋고 색깔도 예쁘지만 잡음 방지를 위해 귀를 완전히 밀폐시키는 구조라 귓속으로 습기가 차기 쉬웠다. 이번에 구입한 이어폰은 골전도 이어폰으로 모양은 귀찌처럼 귓바퀴에 살짝 거는 형식이다. 외부 소리가 다 들리는 대신 음량은 조금 키워줘야 하지만, 일단 귓속으로 습기가 차지 않아서 좋은 편이었다. 쉽게 빠지지도 않는 편이라 딱 운동에 적당한 이어폰이었다. 오늘부터 다시 걷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나는 이번 걷기 운동에 이름을 붙였다. 내가 옛날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붙인 이름은 '이십 리 프로젝트'. 하루에 이십 리 , 즉 8 킬로미터를 걸어보자는 것이다. 대략 이렇게 걸으니 걸음 수로는 만보가 약간 넘는 거리였고 운동량도 나쁘지 않은 듯했다. 마지막 정리 운동은 항상 그랬듯이 9층인 아파트까지 걸어서 올라가기. 이제 스스로에게 '이십 리 프로젝트'라고 되뇌며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해보려 한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자기 스스로와의 약속인지라, 이제 시작한 나와의 약속을 내가 잘 지켜나갈 수 있을지는 나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도, 내가 붙였지만 나의 걷기 운동의 이름이 마음에 든다. '이십 리 프로젝트', 이제 매일 이십 리를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