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주로 집에서, 요즘 배우는 악기 연습 하다가 반나절을 그대로 보낼 때가 있다. 연습한다고 오랫동안 앉아 있으면 발도 저리고 다리도 아프고 몸도 찌뿌둥하다. 늦은 오후가 되어 적당한 바람이 불어오자 이제 좀 움직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500 ml 물 한 병을 들고 집을 나왔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이 긴팔의 아노락 셔츠도 덥게 느껴질 수 있겠다. 그래도 아직은 저녁 공기가 선선해서, 그리고 날벌레들도 있고 해서 긴팔 셔츠를 입고 다니는 편이다. 점점 따스해져 많은 꽃들이 여기저기 피어나는 들길을 지나 도착한 수변 공원에는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저마다 운동을 하거나 반려견을 산책시키며 다니고 있었다. 나 역시 이어폰을 귀에 걸고 음악을 들으며 적당한 속도로 공원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보통 내가 돌아오는 지점에 닿았을 때 문득 직장 동료의 말이 떠올랐다. 그 길의 끝까지 걸으면 내가 사는 이 소도시의 경계쯤 되는 곳으로 그곳에 저수지가 있어 사람들이 제법 찾는 편이라고. 어차피 내일은 일요일인데 조금 더 걸어보는 게 어떨까 하고 저수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길 옆으로 밭이 조성되어 있어서 주인이 정성스레 가꾸는 밭작물이 줄지어 자라고 있었다. 조금 더 가니 이번엔 경작하는 작물보다는 꽃양귀비와 수레국화가 더 화려하게 피어있는 빈터가 보였다. 붉은 꽃양귀비는 청보라색 수레국화와 예쁘게 어울려 흔들리고 있었다. 저녁 해가 산으로 지기 시작했다. 저수지까지 가는 길은 고요했고, 한 두 사람 정도가 그 길을 따라 걷고 있어서 한적했다. 아파트 단지에서 훨씬 떨어진 이곳에 마을이 있었다. 마을의 집들은 각기 예쁘장하게 새로 지어져 있어서 새 동네같이 느껴졌다. 어느 집 앞은 예쁜 꽃들로 가득 차 있어서 산책하는 이를 보드랍게 환영해 주는 듯했다. 마을 앞으로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갈아놓은 넓은 땅이 있는데 아마 어느 시점에서 저곳도 농작물로 가득 찰 것이다. 이어폰을 통해 운동량이 전해지는데 집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이곳에서 되돌아간다 해도 오늘은 10킬로미터를 걸은 것이 된다. 어차피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저수지 둑에도 올라가 보는 것이 좋겠지. 산책길의 반대편 도로와 저수지 수문 부근은 장마철이 시작되기 전에 보수 작업을 하는 중인지 좀 어수선하지만, 이쪽 산책길은 걷기에 불편하지는 않다. 저수지 둑에 오르니 이미 해는 지고 노을이 깔리는 어스름이다. 그래도 오랜만에 이 저수지를 보니 기분은 좋다. 그때는 차를 타고 움직여서 빨리 도착하기도 했지만. 저녁노을이 부드럽게 저수지에 내려앉았고, 멀리 보이는 고속도로의 교각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조금 멀리 떨어지긴 했지만 와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돌아갈 일이 남았다. 천천히 저수지를 내려와 왔던 길로 되돌아온다. 오히려 내가 올라갔던 시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길로 산책 나오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야 왕복 10킬로미터가 넘지만, 부근의 아파트에서 오면 그렇게 먼 곳은 아니니, 오히려 좀 더 조용하고 차분한 산책을 원한다면 여기까지 오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돌아가는 길은 단조롭지만 또 새롭다. 올라갈 때는 조금 남은 햇빛에 한들거리던 수레국화와 꽃양귀비의 반짝거림은 저녁 어스름 속에 조금씩 어두워져 다른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집 근처로 들어서니 다리와 발목이 뻐근하다. 평소보다 약 2킬로미터 정도 더 걸었을 뿐인데 조금 무리가 온 것 같다. 산책으로 걷고 있을 때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아파트로 들어서니 그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주고 나니 조금 편해지기는 했다. 운동삼아 하는 산책도, 다른 모든 일을 그렇게 하듯이, 적당한 수준까지 하도록.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이 맞다. 내일은 평소처럼 이십 리만 걷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