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 '사랑한 것은 너의 그림자'

옛 가요 '들길 따라서'를 흥얼거리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by 낮은 속삭임

퇴근 후 가볍게 물을 한잔 마시거나, 허기가 지면 바나나 하나를 먹은 후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후 걷기에 나선다. 골전도 이어폰은 정말 잘 산 것 같다. 그리 섬세한 귀는 아니라서 음질이 좋은지 나쁜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외부 소음도 들을 수 있지만 또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제품인 것은 확실하다. 귀찌형은 소리가 조금 작은 편인데 귓바퀴에 걸치는 것은 소리가 조금 큰 편이라 오히려 큰 길가에서는 귓바퀴에 걸치는 것이 더 낫다. 아파트에서 나와 큰길을 건너 골프연습장을 지나면 만나는 하천가 들길에 금계국이 노랗게 무리 지어 피어나고 있었다. 코스모스를 꼭 닮았지만, 선명하고 샛노란 그 빛깔이 코스모스와는 묘하게 다른 금계국이 저녁 햇살에 반짝거리는 모습은, '노란 카펫을 깔아놓은 듯한'이라는 틀에 박힌 문구를 떠올리게 하지만, 그만큼 예쁘다. 그 옆을 흐르는 하천의 여울소리가 이어폰 속 노랫소리에 타고 들어와 새로운 배경음악이 된다. 늘 다니는 길이지만 꽃이 피어나면서 길은 또 새로운 모습을 전해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길 한쪽의 밭이었던 곳은 어느새 물을 댄 논으로 변해 있었다.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았지만 아마 얼마쯤 후에는 작은 모가 규칙적으로 심어진 논이 되어있을 것이다. 무논 한쪽 편에 자그마하게 자리한 밭에는 땅콩과 호박, 고구마가 정성 들여 심어져 있었다. 표지판과 아랑곳없이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들이 자리에 앉아 펼쳐놓은 낚싯대의 찌를 바라보며 시간을 낚고 있는 그 길의 모퉁이를 돌면 내가 늘 산책하는 수변공원이 나온다. 하천의 한쪽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반대편 산책길을 따라 걸으면 나도 모르게 오래된 노래 하나가 기억난다. 가수 양희은 님의 '들길 따라서(1976)'는 양희은 님이 작사하고 이주원 님이 작곡한 곡이다. 70년대 포크송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를 수 있는 이 곡은, 아주 오래전 기타를 독학할 때 곧잘 쳐보곤 했던 노래다. 그러다 보니 노래를 익히게 되었고, 나이가 드니 이 노래의 가사가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들길 따라서 나 홀로 걷고 싶어

작은 가슴에 고운 꿈 새기며

나는 한 마리 파랑새 되어

저 푸른 하늘로 날아가고파

사랑한 것은 너의 그림자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


물결 따라서 나 홀로 가고 싶어

작은 가슴에 고운 꿈 안으며

나는 한 조각 작은 배 되어

저 넓은 바다로 노 저어 가고파

사랑한 것은 너의 그림자

지금은 사라진 사랑의 그림자


어릴 때는 '사랑한 것은 너의 그림자'라는 말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도 딱히 이것이라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노래가사도 결국 듣는 이의 경험과 감정이 그대로 이입되어 해석하게 되는 것이니 그래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한 선율에 실려오는 가사의 무게가 제법 묵직하다. 아마도 '사랑'이라는 단어 자체가 다루기에 묵직한 주제이기 때문은 아닐지. 그때의 그 감정을 지금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모든 이들에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의되는 가장 주관적인 감정이 바로 '사랑'일 테니까. 그러나 어쩌면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사랑의 그림자'를, 마음속에 있는 각기 다른 추억의 방에 넣어두고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그 '사랑의 그림자'를 추억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때 그 기억은 마치 상처를 어루만지듯 우리에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아주 가끔, 내가 사랑한 너의 그림자가 내게 위로가 되어주듯이.


매번 같은 시간대에 걷다 보니 매번 스쳐가는 사람들도 거의 비슷하다. 유모차에 반려견을 태우고 산책 나오는 사람들,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는 사람들, 그리고 가볍게 달리기 하는 사람들, 가족끼리 저녁 산책 나온 사람들로 수변 공원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천 둑 위로는 풋살장이 있어서 저녁 운동하는 이들의 소리도 들린다. 하천 둑 아래에 조성된 이 산책길 쪽으로 덩굴장미가 아래쪽으로 늘어지며 분홍빛 꽃을 가득 피우고, 하얀 찔레꽃은 이미 몇 주전에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다 져버린 다음이지만, 꽃향기는 어디선가 풍겨 나와 저녁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이 평온한 공원이 집 근처라면 정말 좋겠지만, 이 공원에서 나와 차들이 많이 다니는 커다란 도로를 건너서도 한참을 걸어야 집에 도착할 수 있다. 집 근처의 산책길만 돌아도 이십 리를 족히 채울 수는 있지만 볼거리도 없는 그곳은 퇴근이 늦어지거나 혹은 다른 일로 집에 늦게 갔을 때 내가 주로 걷는 길이다. 그때는 이 공원 산책보다는 조금 더 빠른 걸음으로, 주변을 보는 일 없이 정면만 바라본 자세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걷는 편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걸으면 잡다한 생각을 할 일이 없다. 목표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걷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이 공원으로 나오려 노력하는 것이다. 가끔 개 때문에 깜짝 놀라기는 하지만, 이곳을 걷다 보면 아주 오래전 내가 주로 뛰어다니며 놀았던 강변이 생각난다. 하천 곳곳에 무리 지어 있는 갈대인지 아니면 하천 억새인지 모르지만 익숙한 풀이 하천가와 하천 중앙의 모래톱에 숲을 이루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았던 그 풀은 조심하지 않으면 이파리에 손이 베일 정도로 이파리가 매끈한 나선 모양에 탄탄하다. 어린 시절엔 저 이파리를 따서 작은 풀잎 배를 만들어 띄워 보내곤 했었다. 그래서 저 이파리를 볼 때마다 한번 꺾어 배를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아, 물론 생각만. 풀잎 배를 어떻게 만들었었는지 거의 기억나지 않아서 아마 만들지 못할지도...?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하천 한가운데에서 날카로운 눈초리를 한 왜가리가 무엇인가를 탁 잡아챘다. 물고기 사냥 성공이었다. 천천히 물고기를 삼키는 왜가리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매번 이리저리 살피기만 하는 모습을 보였던 왜가리의 사냥 성공을 보는 것도 흥미롭다.

해가 막 져서 아직은 사방이 환하다. 왔던 길을 거슬러 천천히 집으로 돌아간다. 해는 졌지만 어스름한 들길에서 금계국은 여전히 산들바람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금계국 옆으로도 이름 모를 수많은 잡풀들이 돋아 서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봄이 깊어가고 있었다. 아마, 나도 모르는 새 여름으로 넘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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