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맘으로 20년 넘게 생활해 오면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혼 후 아이들을 돌보면서 시간과 공간적 어려움이 많았다. 아이가 어린 만큼 나의 직급도 낮았다. 직급이 낮은 만큼 할 일들이 많다. 잦은 병치레도 있고, 때로는 아이들 병원입원등으로 야간에 좁은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자야했다. 다음날 출근길에는 심한 두통도 왔다. 시댁, 친정 어른들이 육아를 함께 하면서 직장맘으로서 엄마의 역할은 근무가 끝나고 저녁에 병원에서 아이와 함께 자는 것이였다. 나에게는 최선이였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엄마의 최선이 아이들에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틈새가 있었다. 엄마부재는 집에 엄마가 없다는 허전함과 그때그때마다 소통할 수 없는 해결점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여대생이 된 큰 딸과, 고등학생이지만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런지 '행복하다'라고 늘 말하는 아들이 있다. 나는 그냥 시간이 흘러가면 아이들이 커가기만 바랬다. 아이들이 크면 엄마역할이 많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막연한 나의 희망이였다. 지금은 그렇게 커버린 딸과 아들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아이들에게 집중할 시간이 적어지면서 자유로워졌다. 엄마를 찾는 횟수가 적어질수록 나에게 시간이 주어졌다. 책을 읽고, 일기적듯이 써 내려간 글들이 나에게 '감사함'을 주었다. 글을 적으면서 그때는 몰랐던 '감사함'에 감동 받았고, 느끼지 못했던 다른 사람들의 배려에 '고마움'마음을 느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이라는 오늘이 더욱 더 소중하였다. 책을 읽을때 감동을 받을때가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체계화되지 않은 생각과 행동은 그저 스쳐지나가는 바람일 뿐이였다. 책을 읽고 한 줄 문장을 내 습관에 체계화하고 아침 눈 떠서 '오늘 나는 무엇을 하고 싶으며,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니?'라는 질문을 시작하면서 모든 것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을 책망하거나 불편함을 말하기 전에 나를 보게 되었다. 20년 넘게 남편과는 바쁜 생활속에서 서로가 공감하고 소통하는 대화는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가 톱니바퀴처럼 끼어져있는 삶속에서 우리 모두 끼워져있었다.
지금은 두려움 가득하고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포기하는 모든 것들에 희망이 생겼다. 소소한 일상까지 공감하는 남편과의 대화가 시작되었고, 공부를 못해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둘째 아들이 사랑스럽다. 남을 먼저 챙기는 배려깊은 딸아이 생각들이 숫자만 큰 무늬만 어른인 나에게는 성장하는 어른으로 변화시켰다. 일기 쓰기 조차 힘들고 어려웠던 나에게 이제 글쓰기는 취미동지가 되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 평가보다는 하루 내가 느꼈던 감정에 진솔함을 더하고 있을 뿐이다. 무지한 글쓰기에 누군가는 웃을 수 있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희망이 되고 싶다. 그냥 특별한 작가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특별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하루하루 버티는 나보다는 소중한 하루에 감사하는 나로 남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