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우리 곁을 떠난 지 4년이 다 되어간다. 밥솥에 밥을 한 적도 없고 반찬을 만들어 본 적 없는 아빠에게 엄마의 빈자리는 외로움이다. 매일 언니가 반찬을 챙겨주고 있지만, 혼자 있는 오피스텔에서 식사를 챙겨드시는 일은 힘든 일이다. 밥솥에 밥을 할 수 있기 시작한 것도 엄마의 부재가 없었다면 움직이지 못할 일이다. 그렇게 아빠는 외로운 식사를 한다. 살면서 배우자의 죽음 강도가 얼마나 컸는지 아빠에게 파킨슨병이 왔다. 손떨림 시작으로 식사와 걷기가 조금씩 불편하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아빠의 외로움은 커져간다. 예전부터 뉴스 등을 보신 이야기를 하시는 것을 좋아하시는 아빠는 딸들과 사위를 만날 때 묻어 두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어눌해진 말씨도 서툴러진 손떨림도 잊은 채 말씀하신다. 그 모습을 보고 언니랑 나는 웃는다. 외로움을 쌓고 쌓았다가 터져 나오는 웃음보따리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으셨는지 순서 없이 뒤죽박죽으로 얽혀서 말씀해 주시니 얼마나 웃긴 모습이겠나...... 팔순 아버지가 귀여워 보인다.
자식들이 저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아쉬움이 아빠 외로움으로 쌓이고, 그 외로움이 절박한 만남에서 웃음보따리를 풀어내는 모습이 엄마를 떠나보낸 후 슬픔을 이겨내고 싶은 딸내미들 마음 여유일 것이다.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모아져서 불편했던 마음을 잔소리처럼 쏟아내던 모습에서 몸과 마음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에게도 시련과 아픔의 터널을 지나 서로의 마음을 맞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아직도 '엄마'라는 단어를 감히 말하지도 못하고 글로 적지도 못한다. 가슴에 사무치도록 미안함과 죄송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왜 나는 엄마가 아플 때 더 많이 안아 주고 더 많이 함께 하고 더 많이 밥을 함께 먹지 못했을까?
지금 나는 죄인처럼 '엄마'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다.
오늘도 아빠는 외로움 속에서 웃음보따리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