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에게 점심시간은 꿀처럼 달콤하고 맛있는 시간이다. MZ 세대들이 공감대 형성이 부족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중에 점심시간을 제각각 소중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이어트, 건강 식단, 영어 공부, 운동 등 각자의 소망을 점심시간에 쏟아붓는다. 처음이 어색할 뿐이지 지금은 낯선 풍경은 아니다.
예전 직급이 낮았을 때는 그렇게 높게만 보이는 6급 사무장님이나 계장님, 5급 동장님들이나 과장님들이 어려웠는데, 나도 이제 나이가 내 속에 차면서 이분들이 더 익숙한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경험과 나이가 90년대생이나 2000년생들 직원들보다 윗분들이 더 익숙해지고 있는 것이다. 점심 먹고 20분이나 30분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직장 주변을 걸어가는 것이 우리들의 작은 행복이다. 나름 많이 먹은 밥에 대한 미안함의 해소가 아닌가 싶다.
골목길 사이사이를 걸어오고 있었다. 골목길 끝에서 다리가 불편해진 어르신께서 목발을 짚고 걸어오고 있었다. 오늘따라 만취 아니 만복 해진 내 배를 두 손을 뒤로 짚으면서 걸고 있었다. 그런 4명의 여자들을 마주한 어르신께서 대뜸 말씀하셨다. " 아니 노인네도 아니고 뒷짐을 짓고 걸어가는 거야" 느닷없는 목소리에 우리들은 깜짝 놀랐다. 그 순간 나는 대뜸 " 제가 배가 나와서요 "라며 말을 했다. 어르신이 하신 말씀에 그렇게 빛의 속도로 대답하고 반응할 수 있었는지 알 수는 없다. 어르신께서는 " 배는 무슨. 배도 안 나왔구먼"이라고 하셨고, 나는 바로 "고맙습니다." 하며 멋쩍은 웃음으로 서로의 길을 걸어갔다.
함께 한 동반자들은 웃음 반 짜증 반으로 말했다. "아니 어르신 몸도 불편하신데, 괜히 우리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시지? 이해가 안 되는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책 없는 이런 상황에 할 말이 없는 표정들이었다. 그런 상황에도 사실 나는 마음의 동요와 흔들림이 없었다. 순간 이런 평온함은 필사의 힘이 아닐까 생각 들었다. 수많은 상황과 변수에 흔들릴 수 있는 나였는데 어느 순간에 부정의 순간, 악담의 공간, 악의의 말에도 그 손을 잡아 줄 수 있을 만큼 평온함이 생겼다. 심지어 '측은지심'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어르신이 발도 불편한데 목발을 짚고 이 추위에 골목길을 걷으면서 말할 동지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던지고 싶은 말 한마디가 얼마나 하고 싶었던 대화였는지 생각하니 측은지심이 생겼다.
뼛속까지 스며들어 내 생각 이전에 반응하고 행동하는 체계화된 내 것이 되어야 진정한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임을 그 순간 뜨겁게 깨달았다. 물에 조금씩 젖어가듯 시나브로 내가 매일 적는 필사가 내 몸 구석구석을 적시고 있었던 것이다. 힘든 발걸음을 옮겨가는 그 어르신께 건강하시고, 조금 더 마음이 평온해지시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