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와 내려놓음

by 조건

창밖은 봄볕이 따스하고, 새들은 한껏 목청을 높이는데, 햇살을 타고 게으름이 밀고 들어와 방안을 가득 채운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어지러워진 방안을 보며 새삼 홀아비의 삶이 서글퍼진다. 점심을 때우려 집어든 라면의 가닥가닥 사이로 한숨이 비켜간다. 방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책들을 주섬주섬 치우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 주인 노릇을 할양으로 나를 나가라 하며 밀쳐낸다.


대충 정리를 하던 중에 언뜻 눈에 띤 법정 스님이 쓴 『무소유』 와 이용규 선교사가 쓴 『내려놓음』 이란 책이 눈에 띄었다. 이 책들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모두가 종교인이 쓴 책 이라는 점이고 둘은 독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로 밀리언 셀러가 되었다는 것이다. 셋은 가장 읽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두 책을 비교 하며 생각에 빠져 보았다. 왜 이 책이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붙여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을까? 성경이나 불경을 독해한 설법도 아니고, 산문형식으로 써내려간 평범한 글인데 말이다. 사이비 종교를 제외한 종교는 모두가 아름다운 가난을, 냄새나는 탐욕을 내려놓기를 가르친다. 한 벌의 먹물 옷과 발우 한 벌이면 족하고, 두벌의 옷도 가지지 말 것 이며, 부자가 천국에 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고 얘기하신 부처와, 예수의 가르침은 준엄하고, 엄수해야할 덕목이다. 그런데 기본으로 지켜야할 이러한 청빈한 삶이 어느 종교 할 것 없이 실종 된지 오래 이고 박물관 구석에 먼지를 쓴 채로 걸려있다. 당연한 얘기가 철학이 되고 명언이 되어 인간들은 열광하고, 청빈한 성직자가 희귀동물이 되어, 보호 종으로 보존되는 이상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썩어서 문드러진 곳들을 코를 막고 들추어 보자. 먼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도 무문관(無門關) 에서 하루 한 끼 공양으로 3년간 문 밖 출입을 하지 않고 참선을 하다가 열반에 드는 스님, 기도원에서 한 달씩 금식 기도하며 30년 된 소나무를 붙들고 하나님을 부르며 나무를 뿌리째 뽑아버리는 목사님도 계시고, 농촌교회에서 열악한 재정으로 밥을 굶고 목회하시는 목사님도 많이 있고, 수도원에서 수 십 년을 외출을 하지 않는 초인적 금욕으로 수도하시는 수도자도 계심을 우리는 기억한다.


고위층의 스님들이 억대 판돈을 걸고 양주에, 술판에 색이 빠져서 무슨 재미일까? 당연히 아가씨까지 동반하고 도박판을 벌인 현장이 카매라에 찍혀서 지상파 방송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져 스님들이 가난하지 않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어느 총무원장을 지낸 분은 비구니 스님을 겁탈하여 자식을 낳고 소문이 퍼지자 외국으로 내어 보냈다. 극구 부인하다 많은 증거들이 나오자 DNA 검사를 하겠다고 하고서는 임기가 끝날 때 까지 뭉개더니 지금도 그러고 있다한다.


우리 목사님들을 한번 보자. 서울의 유명한 교회 목사님은 재임기간에 1.000억 원이 넘는 비자금을 만들어 관리하던 장로가 일부를 횡령하여 목사하고 다툰 뒤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러더니 자식에게 교회를 세습하고 신도들이 들고 일어나자,노회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한 뒤 노회는 법을 개정하여 합법이라고 얼빠진 목사의 손을 들어 주었다.


신부님을 한번보자. 거리의 부랑아와 거지들을 모아서 꽃동네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많은 어려운 이 들을 구제한 신부님은 대단한 존경과 박수를 받으며, 이 시대의 예수님 같은 신망을 얻었던 그도 결국 돈의 사슬에 묶여 하루 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무소유를 잘 지킬 수 있는 종교를 분석해보자.

스님은 출가하면서 혈연을 끊고, 자유 함으로 용맹정진 할 때에 자식이나 마누라, 부모의 봉양에도 해당 없으니 돈이 필요치 않고, 거기에 고기도 먹을 일 없으니 식비도 부담 없고, 술, 담배를 못 하니 더욱 그렇다. 식사는 소속된 사찰에서 시간 맞추어 울력에 참가하면 밥을 주니 무소유를 하지 말래도 자연 무소유가 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지혜로운 부처님은 탁발이라는 천재 같은 제도를 만들어 수치심 없이 얻어먹도록 하기위해 “탁발공양도 수행이고 탁발을 통해 대중은 선을 쌓는다.” 고 했으니 얼마나 떳떳한가?


신부님은 스님처럼 모질게 혈연을 끊지 않아도 된다.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오고 가기는 하나보다. 그러기 위해 돈이 필요하고, 특히나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은 술과 담배를 피워야 해서 일 것이다. 사제가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기엔 품위가 떨어지고 최소 와인이나 위스키, 꼬냑 정도는 마셔야 할 것이다. 신자들이 좋은 술 만 생기면 신부님을 먼저 챙기겠지요. 추기경쯤 되면 여송연은 물어야 품격이 살지 않을까?


목사님을 생각해보자. 우선 양가 부모님을 모셔야하고, 자녀를 양육하고, 교육을 시켜 사회에 내보내는데 수억이 들어간다. 술, 담배만 안 먹지 먹을 건 다 먹어야지, 품위를 지켜야하는 어려움도 있다. 얼마 안 되는 사례비는 어림도 없다. 그리하여 기독교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어보자. 십일조를 안내면 하나님 것을 떼먹는 거라며 거품을 문다. 20가지도 넘는 수많은 헌금봉투를 신도들은 파도가 밀려오듯 돈을 넣어 막아 내야한다. 직분을 맡을 때마다 감사 헌금을 내는데 정해진 가격이 있어 그 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면 바로 심판대에 오른다. 교회는 좀도 슬지 않고 도둑도 들지 않는 하늘창고라며 유독 교회에 쌓아 두라한다. 자세히 보니 알리바바가 사는 집이 그 안에 있는 것 같다.


성직자 들이 많은 고행과 인내, 살을 도려내는 수행을 통해 부처가 되고, 예수의 제자가 되어 죄인을 구원하고,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제도하고자 한다. 그러나 눈앞의 달콤한 꿀의 유혹을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돈은 예수나, 부처보다 능력이 차고 넘쳐 못 이루는 것이 없는 전지전능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지옥이니, 무간지옥, 연옥은 본 사람도 없고 만약에 없다면 원통함을 어찌할까? 지옥은 멀고, 황금은 가까 우니 도덕과 윤리, 교리에서 설파하는 율법은 잠시 창고 넣어 두었다가, 죽기 전에 회개와 참회, 고해성사로 사함 받으면 천국에 가고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논에는 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피라는 잡초가 있다. 드물게 있어야할 피가 논 전체를 차지하고 벼는 찾기가 힘들 정도다. 법정스님은 얘기한다. “무소유는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불필요한 것을 소유하려는 탐욕을 버려라.” 라고. 이 시대의 진정한 설법으로 무소유를 실천하신 스님이기에 모두가 스님의 향기를 흠모한다. 그리고 또 하나, “타의에 의한 가난은 궁핍(窮乏) 하지만 자의에 의한 가난은 청빈(淸貧) 하다.” 라고 하셨다. 하버드라는 최고의 박사학위를 내려놓고 선교사의 길을 택한 이용규 선교사님. 화려함을 내려놓으심으로 우리에게 울림을 주신 분이다.


나는 소망한다. 어느 눈 내리는 겨울날, 몹시도 추운 방에서 가족과 함께 눈물로, 가난을 감사하는 목사님의 기도가 흘러나오고, 누더기 승복을 입은 스님이 동안거를 해제 하시고, 만행을 떠나시며 무소유를 감사하는 목탁 소리가, 아멘과 함께 눈 위에 하모니를 이루어 메아리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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