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과 아집 사이

by 조건

우리는 살면서 고집과 아집에 대하여 가끔 혼돈하기도 한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아래와 같이 나와 있다.

고집은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티는 타당성이 있는 생각이고

아집은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 집착하여 자기만을 내세우는 타당성이 없는 생각이 라고 되어있다.


가령 독립투사가 일경에 붙들려 갖은 고문에도 목숨을 내놓을지언정 굴복하지 않는 것은 신념을 동반한 고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 아이가 잘못을 저질러 아버지에게 회초리를 맞으면서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로 끝내려는 아버지의 독촉에도 끝내 입을 열지 않고 종아리에서 피가 나도록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고 있는 그 아이는 독한 아집에 묶여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나에게는 좋은 친구가 하나 있다. 술도 잘 먹고, 노래도 잘 부르고, 잡기에도 능한 친구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에 관심도 많고 박식한 친구다. 교대를 졸업하고 교장으로 정년퇴직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이친구가 대단한 고집의 소유자이디. 언제 부터인지 누구 입에서 시작 됐는지는 모르지만, 고집의 순서가 안, 강, 최 씨 순이라는 말이 있었다. 이안에 속한 성씨인데 밝히지는 않겠다. 거기에다 승부욕이 어찌나 강한지 무엇이든지 지고 집에 간 날은 밤새 이를 갈아 한숨도 못 잔다는 아내의 증언이다.


1985년 쯤 어딘가 일 것이다. 우리는 친구 넷이서 저녁을 먹으며 소주를 한잔 하고 있었다. 마침 텔레비전에서 석유파동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얼마 전에 우연찮게 사우디아라비아가 매장량 이 1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우디라는 나라의 대단함을 자랑하듯 무심코 얘기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나를 몰아 부치듯 한마디 했다.


“야! 그건 틀린 얘기야! 옛날 말이지 지금은 미국이 제일 많은데 비상시국을 대비해서 자국의 석유는 묻어두고 사서 쓰기 때문에 사우디가 제1이라고 하지만 실은 미국이 엄청난 석유를 지하에 묻어두고 있어!”

나는 얼마 전에 들은 지식이지만 그 친구의 단호한 대답에 어정쩡하게 물러서려 하는데 이때를 놓치지 않는 거간꾼 친구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둘의 얘기가 맞는 것 같으니까 자존심의 대결이니 10만원 콜 어때?”


말이 떨어지자 그 친구는 당연히 콜 했고 엉겁결에 나도 반 강제로 따라 갈 수밖에 없었다. 돈이 없다고 하자 마침 월급날이라 거간꾼 친구는 가진 돈이 있다며 대부 까지 해주겠단다. 결국 패자의 돈으로 식대부터 2차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지금이야 인터넷에 들어가면 지식의 바다라고 할 정도이나 그 시절은 삐삐 시대 였으니 스마트 폰이 있을 리 없다. 식당주인 에게 시외통화료를 주기로 하고 114 에다 물어 대한석유공사 숙직실로 전화를 걸었다. 잠에 취한 숙직자는 자다가 봉창 뚫는 소리에 어안이 벙벙해했다. 석유매장량 1위나라를 묻는 정신없는 사람에게 그래도 그는 친절히 응대하며 자기가 정확히 알아가지고 전화를 해주겠단다.


얼마 후 걸려온 전화의 답은 사우디였다. 그 친구는 담당자가 잘못 알았다며 오늘은 내가졌지만 자기가 정답을 찾아오겠다며 다시 확인 하자고 했다. 거간꾼의 노련한 테크닉은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승자는 기쁨의 장원주가 있어야 하니 5만원을 내서 한잔 더 하고 가자!”

그리하여 우리는 석유가 준 풍요함으로 맘껏 취해보았다.


세월이 얼마 흐른 뒤 그 친구들이 다시 모여 소주잔을 기우리며 취기가 돌 무렵 체력에 대한 자랑이 시작됐다. 한 친구는 특수부대 대대장으로 퇴직한 군인이었다.

“야 이 사람아! 너는 날고뛰어도 오 중령 에게는 안 돼!”자신 있으면 10만원 콜 어때 ? “

거간꾼 친구의 조롱 섞인 소리에 그 친구는 바로 콜 이라고 호기 있게 소리친다. 식당 뒤편에 초등학교가 있으므로 술좌석을 그대로 두고 운동장으로 갔다.

운동장 한 바퀴 먼저 돌아오는 자가 승자가 되는 게임이었다. 나름 학교에서 아이들과 뛰었던 실력이 있었나보다. 하지만 얼마 전에 퇴직한 그는 고급장교이지만 특수부대장은 구보가 일상이었던 그를 과소 평과 한 것이었다. 반 바퀴 정도는 비슷하게 보조를 맞춰 뛰면서 특수부대 실력을 보여주었다. 결과는 당연히 군 출신 친구의 압도적 승리였다. 덕분에 거나한 파티를 즐겼다.

절대로 자기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졌으니 다시 한 번 하자는 그의 항의에 우리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는 멋진 캠핑카를 장만해서 아내와 함께 산천을 주유하며 멋진 삶을 살고 있다. 오랜만에 만나면 그는 재미있는 장기 숙박자 의 얘기에 열을 올린다. 자연 속에서 만난 그 들과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우리는 웃음을 거둘 수가 없다. 수영 실력을 겨룬다고 술에 취해 한밤중에 바다에 뛰어들어 119신세를 지고 살았다하니 그 호기는 쉽게 고쳐지지 않나보다.


올바른 고집은 때로는 열정이 되기도 하고 자신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 된다한다.

하지만 고집이 변질되어 아집이 되면 석화된 의식의 단단함은 핵폭탄으로도 어쩔 수 없는 불통이 될 것이다. 내가 정답이고 제일 이라는 환상에 취하면 간단한 일이 아닐 것 같다. 이제 다시 만날 날을 대비해서 상식과 시사 공부를 단단히 준비 해야겠다.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석유 매장량 제1의 나라를 검색했더니 뜻밖에도 남미의 베네수엘라였다. 그런데 석유의 저주가 있다는데 맞는 말인가 보다.

엄청난 경제 공황에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다하니 의아 할 뿐이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 얕은 지식으로 내기는 힘들 것 같다.


나는 그 친구의 열정을 좋아한다. 끝없는 탐구와 지지 않으려는 용기 또한 신선하다. 다만 나를 겸손함으로 고개 숙이는 겸양을 배웠으면 하는 바램 이다. 오늘은 어디쯤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어깨를 맞대고 노을을 보고 있을까? 흔들리는 모닥불의 여운이 밤하늘의 적막을 유희할 때 그는 노래하리라.

“나는 피리 부는 사나이, 언제나 웃는 멋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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