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신들이 섬에 내려오시니』 리뷰
*스포일러 포함*
『오래된 신들이 섬에 내려오시니』는 제주 설화를 기반으로 창작한 코스믹 호러 단편집이다. TRPG 『크툴루의 부름』이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코스믹 호러의 수요가 많아졌는데, 제주 설화는 이 장르와 결합할 때 큰 유익이 있다. 한국인이 쉽게 공감할 수 없는 두족류에 대한 공포나 인종차별적 요소를 포함한 영국식 코스믹 호러의 대안이 될 수 있다. 제주 설화는 - 안타깝게도 제주도민을 제외하면 - 한국인이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하지만, 두려워할 수 있을 정도로 낯설다.
수록된 여섯 작품은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뿐 아니라, 자연 현상, 국가 권력, 촌락공동체, 억겁의 시간 등에서 코스믹 호러를 끌어낸다. 하나씩 살펴보자.
「광기의 정원」은 가장 기획 의도에 부합하는 작품이다. 설화 속 서천꽃밭에 들어선 민속학자들은 그들이 발견한 것이 희망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단지」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육지에서 제주로 놀러 온 두 친구는 학살과 여성의 역사가 담긴 단지를 발견한다. 「수산진의 비밀」은 가장 참신한 작품이다. 유일하게 조선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서, 제주로 유배되어 온 성리학자가 자신의 세계관을 뒤흔들 끔찍한 문화를 접한다. 「딱 한 번의 삶」은 가장 시의성 있는 작품이다. 여자는 엄마와 자신의 영원히 불행한 운명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 계속해서 이어도를 찾는다. 「뱀무덤」은 가장 러브크래프트 같은 작품이다. 대학원생은 지도교수를 따라 뱀신의 사원에 답사를 나간다. 그는 사원에서 형언할 수 없는 공포를 마주한다. 「영등」은 여러모로 가장 아쉬운 작품이다. 가족 없이 자란 주인공은 애인을 따라 영등 마을의 새로운 주민이 된다. 낙원 같은 영등 마을의 이면에는 깊은 어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래된 신들이 섬에 내려오시니』는 제주 코스믹 호러이기도 하지만, 현대 코스믹 호러이기도 하다. 1920년대와 다르게 여성의 경험에 주목하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단지」와 「딱 한 번의 삶」은 한국 여성이 겪은 시대적 부조리에서 공포를 끌어낸다. 이는 페미니즘적으로 뿐 아니라 장르적으로도 효용성이 있다. 러브크래프트의 공포는 세계대전이나 문화권의 충돌에서 착안한 것이 많다고 여겨지는데, 이러한 모티프를 직접 겪지 않은 현대 독자들에겐 현대 여성의 이야기가 더 공포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 아쉬운 점은, 오마주의 비중이 너무 높다. 「수산진의 비밀」은 「인스머스의 그림자」와 유사하다. 「뱀무덤」은 작가의 말에서 언급하듯이 「광기의 산맥」에서 따 온 요소가 많다. 「영등」은 영화 <겟 아웃>과 심할 정도로 비슷하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보다는 이견의 여지가 많지만, 「딱 한 번의 삶」의 초반부는 영화 <김씨 표류기>의 초반부와 유사한 점이 많다. 이렇게 오마주가 많은 이유는 국내에서 코스믹 호러가 충분히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한국에서 장르 문학은 좋은 취급을 받지 못했고, 그중 코스믹 호러는 인터넷에서 팬 소설로 간간히 창작된 정도로 다루어졌다. 최근 『저주토끼』의 부상으로 공포 문학이 관심을 받기 시작했는데, 시대에 맞는 코스믹 호러가 많이 시도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