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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귤 Apr 17. 2024

범인은 왼손잡이야!

『명탐정을 꿈꾸는 당신이 알아야 할 것』 리뷰

  직업을 고를 때 고려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다. 급여, 통근 시간, 복지 등.... 그중에는 낭만이 있다. 낭만은 어릴 때 본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따위에서 주로 생성된다. 고충을 배제하고 멋있는 면만 선별해서 전시한 미디어를 본 청소년이, 어른이 되어서 실제로 그 직업을 체험해 보면 낭만은 파괴된다. 경찰은 악성 민원과 잦은 부상 위험에, 프로게이머는 하루 12시간이 넘는 연습 시간과 거북목증후군에, 소설가는 낮은 고료와 마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끝까지 낭만을 지킬 수 있는 직업이 있다. 바로 사라진 직업이다. 오래전에 사라진 직업은 직접 체험할 방법도, 현직자의 이야기를 들을 방법도 없다. 『명탐정을 꿈꾸는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사라진 직업 중 가장 활발히 낭만화되는 탐정을, 그냥 탐정도 아니고 명탐정을 다룬다.


  '탐정물'로도 부를 수 있는 추리 소설은 한 시대를 풍미한 장르이다. 어마어마한 양의 작품이 창작된 만큼, 장르의 문법도 굳어졌다. 이 책은 그러한 클리셰를 탐정, 사건, 조력자, 범인, 피해자라는 다섯 가지 주제에 맞게 분류한다. 언뜻 보면 책이 추리 소설을 만끽하려는 건지 비판하려는 건지 헷갈릴 수 있다. 그건 클리셰의 이중적 속성 때문에 그렇다. 부정적인 뉘앙스로 자주 언급되는 클리셰는 서사 구조를 뻔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반전이 중요한 추리 소설에서 뻔함은 치명적인 약점이다. 하지만 클리셰는 장르를 장르답게 한다. 뻔할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는 것은 잘 먹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르의 마니아는 클리셰와 애증의 관계에 있다. 이렇게 보면 이 책이 클리셰를 통해 명탐정에 대한 순수한 동경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클리셰를 풍자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반은 일러스트다. 왼쪽 페이지엔 글이, 오른쪽 페이지엔 만화 느낌의 일러스트가 배치되어 있다. 이목구비가 없는 흑·백·적(흑백+피의 이미지)의 일러스트는 누아르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여기에 어처구니없는 대사가 담긴 말풍선을 넣어 위트를 더했다.


  명탐정이 되기 위한 모든 준비 과정을 알려주지만, 너무 허무맹랑해서 실현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제목과 참 잘 어울린다. 명탐정을 꿈꾼다면 알아야 할 것이라 했지, 명탐정이 되게 해준다고는 안 했기 때문이다. 낭만을 고이 지켜주는 허무맹랑함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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