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리뷰
*스포일러 포함*
지우와 은표는 인터넷 소설창작 카페에서 활동하는 회원이다. 둘은 기발한 상상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트는 장난을 꾸민다. 그 장난의 구심점으로 이상 김해경의 시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선택한다. 이상이 시인뿐 아니라 건축기사로도 활동하던 것에서 생각을 발전시켜, 일제가 약탈 문화재 '고타니 컬렉션'을 은닉하는 공사에 이상을 대동했고, 이상은 죄책감을 해소하기 위해 고타니 컬렉션의 위치를 암호화한 작품을 발표했다는 내용의 소설을 게재한다. 하지만 허구라고 여긴 내용은 사실이었고, 이상의 비밀을 지키고 싶어 하는 정체불명의 인물들이 지우와 은표를 위협한다. 오기가 생긴 두 청년은 진실을 알기 위해 단서를 찾아다닌다.
나는 2016년 말에 나온 개정판을 읽었다. 홍대 클럽, 인터넷 카페, 대통령 사 년 연임제 도입 따위가 등장해 2010년대 사회 분위기상 자연스러웠다. 나는 덧싸개를 불편해해서 늘 버리는데, 안의 붉은 색 표지가 고급스러면서 공포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표지의 재질은 질감은 좋았지만, 물에 취약해서 너무 불편했다. 보통 표지는 방수가 되니까 주변의 작은 물방울 정도는 신경 쓰지 않고 책을 놓는데, 이 책은 확 젖고 자국이 남아서 고생했다.
실존하는 다른 작품을 소재로 삼은 이 독특한 소설은,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독자를 사로잡는 실력이 탁월하다. 추리를 해가며 읽는 소설은 전개 속도가 몰입감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작품은 단서가 어떻게 산개되어 있는지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고, 늘어지지도 급하지도 않게 진실을 보여준다. 마치 천으로 가린 지도를 매초 정확한 면적씩 공개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도달하게 된 최종장에선 고타니 컬렉션의 충격적인 정체가 밝혀진다. 그것은 기발하고 공포스럽고 그럴듯하다. 도진기의 『정신자살』의 결말에서 느껴본 감정을 오랜만에 마주했다.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은표가 철심 뽑는 노인 서성인을 만나러 간 부분이다. 이전까지는 지우 입장에서 주로 서술되어, 은표가 무슨 일을 맡던지 손쉽게 해내는 신묘한 인물처럼 보였다. 산에 사는 서성인을 만나기 위해 막무가내로 산장에서 숙박하는 모습에서, 은표가 정보력에서 앞설 뿐이지 결국 지우랑 다를 것 없이 사건을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긴장감을 유지했다.
이런 탁월함에도 재미를 해치는 치명적인 요소들이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반일 감정에 기반한 민족주의다. 결말부에 갈수록 심해진다. 일제의 만행을 주요 소재로 삼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제풍수모략설 같은 도시 전설을 차용하는 것은 미스터리 소설임을 감안하여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본식 건축 기법과 예술을 악하게 묘사하는 것이나, 제국의 군인 다카하시와 대적하면서 가나 문자를 평가절하하고 한글을 창제한 민족을 내세우는 장면에서는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하나는 실제 작품을 차용하면서 생긴 문제다. 작품 내 음모론에 맞춰야 하다 보니 「건축무한육면각체」의 해독이 억지스럽다. 지나치게 복잡하거나 도리어 허무하다. '앙부일구방' 같은 복잡한 쪽은 이해가 가지 않아 차라리 괜찮다. '거울방' 같은 허무한 쪽은 작위적인 느낌에 몰입이 깨진다.
민족주의에 대한 구시대적인 접근방식 때문에 아는 사람에게 소개하거나 추천할 때 마음에 걸리는 소설이다. 하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정도로 재밌다. 영화도 있다는데 소설의 맛을 살리지 못했다고 한다. 은표의 직업은 도대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