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ㅇㅇㅇ도 ㅇㅇ시 ㅇㅇㅇ탁구장. 탁구대 4대, 탁구 로봇이 있는 탁구대 1대, 레슨 탁구대 1대.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위치가 좋은 것도 아닌 탁구장. ㅇㅇ시에서도 이 탁구장의 존재는 미미하다. 달랑 회원 3명이(다른 구장은 보통 몇십 명이 대회에 나온다) 지역 대회에 나가 6, 7부 통합 2, 4위를 했는데도 “무슨 탁구장이라고요?” 모르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으니 회원 숫자는 무려 80여 명. 오전 10시에 출근하는 관장님은 밤 10시까지 레슨을 한다. 그야말로 12시간 풀타임 근무를 한다. 쉬는 날이라곤 추석과 설날 딱 이틀뿐.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어요? 전 답답해서 하루도 못 살 거 같아요.” 아마추어 1부 이자 40년 구력의 관장님 왈 “난 하나도 안 힘든데. 난 탁구장에 있는 게 제일 좋은데.” 아! 정말 천직이 따로 없다.
항상 웃는 얼굴에 유치원생부터 70대 어르신까지 정말 잘 맞추어 주신다.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들을 위해서는 “이것만 하면 돼. 다 끝나간다. 많이 좋아졌어.” 등 칭찬 세례를 퍼부으며 어떻게든 탁구에 재미를 붙이도록 유도한다.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시는 어르신들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조차 싫은 내색 없이 ‘허허’ 웃으며 다 들어주신다. 그야말로 포용력 갑이다. 자존감은 또 어찌나 높은지 모든 것이 자기 자랑으로 끝나는데 그게 또 밉지가 않다. 회원과 게임을 하다가도 “봐. 죽이지? 이게 바로 1부의 드라이브야.”라며 본인의 존재감을 ‘뿜뿜’ 하는 관장님을 누가 말리겠는가. 게임에서 밀리면 “아, 이게 왜 안 들어가지?” 탄식하다가도 전세가 바뀌면 “됐어. 좋아.”라고 누구보다 큰 소리로 파이팅을 외치며 아이처럼 좋아한다. 코치님들은 회원들이 쑥쑥 커가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관장님을 보면 글쎄다. 회원은 뒷전이고 우선 자신이 게임에서 이겨야 한다. 관장님이건 회원이건 무조건 게임에서 이기고 봐야 하는 게 어쩌면 탁구라는 세계의 기본값인지도 모른다.
잠깐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회원들이 이렇게나 많은 이유는 뭘까? 탁구장에는 초보 회원들이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 처음 라켓을 잡고 낯설디 낯선 탁구장을 왔을 때 사람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에 쭈뼛쭈뼛하기 쉽다. 이때 관장님의 세심한 배려가 빛을 발한다. 이것저것 신상을 물어봐 주고 다른 회원들에게 소개해 주고 탁구장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챙겨주신다. “우리 탁구장은 초보 회원들을 잘 쳐준다. OO 씨, 여기 좀 쳐줘.”라며 여기저기 회원들을 연결시켜 준다. 초보 회원이 탁구장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도와준다.
초보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상위 부수 회원들은 왜 초보 회원들이 많은 탁구장을 다니는 걸까? 우리 탁구장에는 전국 오픈 탁구 대회에서 여러 번 입상한 상위 부수 회원도 있다. 한 번은 다른 구장 사람이 그에게 미심쩍은 눈으로 “아니 그 탁구장은 초보자도 많고 상위 부수들도 많이 없는데 왜 거길 다녀요?”라고 물은 적이 있단다. 그는 “한 번 와 보세요. 저희 탁구장 좋아요.”라는 대답을 했다고 한다. “좋아요”라는 말은 추상적이지만 이 두루뭉술한 말에 어쩌면 답이 있는지도 모른다.
탁구를 더 잘 치기 위해서는 선수 출신 코치에게 가거나 잘 치는 회원들이 많은 탁구장을 가는 게 당연한 순서 같지만, 그에게는 그럴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탁구를 치는지 관장님과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한다. “라켓을 이렇게 잡고 치니까 훨씬 잘 쳐져요. 이렇게 하는 거 맞죠?” “이런 방법도 있는데 이 방법은 어떤가요? ” 등등. 간혹 이야기가 길어지기도 하는데 관장님은 그런 경우에도 그의 말을 잘 들어준다. 추측해 보건대 그는 이러한 이유로 지금의 탁구장이 좋다고 말한 것 아닐까?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에서 아르바이트생 민준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 휴남동 서점을 찾은 날 처음 느낀 기분이었다.” 그 역시 관장님에게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탁구장을 옮기고 싶어 하지 않는 것 아닐까?
관장님과 레슨실이 아닌 탁구대에서 게임을 하는 회원이 있다. 그의 레슨은 게임으로 대체된다. “회원이 레슨 대신 게임을 원하잖아. 회원의 니즈를 맞춰 줘야지.” 게임을 하느라 숨이 차게 탁구대를 뛰어다니는 관장님은 회원들의 니즈를 위해서라면 레슨실과 탁구대를 가리지 않는다. 이 회원의 만족도는 묻지 않아도 입꼬리가 올라가고 즐거워하는 그의 표정에서 알 수 있다.
나 역시 관장님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관장님 입장에서 보면 참 특이한 회원이 아닐 수 없다. 레슨 받거나 탁구 로봇과 연습하거나 회원들과 연습만 하다 가는 회원. 내가 만약 관장이라면 “게임 좀 해.” 압력을 넣을 법도 한데 그러지 않는다. 오히려 회원들이 “연습 좀 그만하고 이제 게임 좀 해요,”라고 압박이라도 하는 날이면 옆에 있던 관장님이 한마디 하신다. “왜들 그래. 그냥 이런 사람도 있는 거지.” 만약 관장님마저 “맞아. 언제까지 연습만 할 거야?”라고 몰아붙였다면 아마 탁구장을 계속 다닐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내 기질이 받아들여지기에 계속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가 어디를 가야 행복한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자기 본성이 받아들여지는 곳에 가야 행복하다.
탁구를 시작한 초기에는 코치에게 있어 탁구 기술을 가르치는 능력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탁구장은 그렇게 단순한 원리로 작동되지 않는다. 탁구 또한 마찬가지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매너부터 시작해서 탁구 외적인 것이 사실 더 많다. 기술 외적인 부분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걸 관장님을 보면서 알았다. 무언가의 본질도 중요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게 본질만으로는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