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플레이의 반은 백 드라이브(백핸드 드라이브를 줄여서 부르는 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 서비스에 이은 공도 백 드라이브. 상대의 서비스를 리시브할 때에도 백 드라이브. 심지어 커트보다는 백 드라이브 리시브가 편하다. 처음에 커트를 해서 넘겼다 하더라도 다음에 오는 커트 공은 무조건 먼저 백 드라이브를 걸거나 포핸드 드라이브를 건다. 내 생전에 두 번 이상의 커트 랠리는 없다.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를 하는 게 습관인지라 회전이 많은 횡 서비스의 경우에도 백드라이브하듯 라켓을 내리는 바람에 미스를 하기도 한다.
백 드라이브에 심취해 있어도 너무 심취해 있다. 백 드라이브에 회전이 많진 않지만 미스가 거의 없어 리시브 성공률도 꽤 높아졌다. 자신감 만땅이다. 자신감 때문인지 백 드라이브를 포핸드 쪽으로 거는 여유도 생겼다. 이미 마음은 백 드라이브로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 백 드라이브가 잘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 웬만한 공은 백 드라이브로 다 걸 수 있다는 믿음. 실제로 다 거는 건 불가능하지만 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회전량과 속도면에서는 갈 길이 한참 멀지만 말이다.
“무조건 백 드라이브로만 리시브하지 말고 커트도 섞어서 해야 된다고요.”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유난히 커트에 자신 없는 내게 둘 다를 병행하는 건 오히려 역효과였다. 백 드라이브와 커트를 섞어 리시브를 한 적도 물론 있다. 그러나 커트로 넘기다 커트가 붕 떠서 드라이브로 두들겨 맞기라도 하는 날이면 잘 되던 백 드라이브도 덩달아 되지 않았다. 자신감은 사라지고 마음은 점점 위축되어 갔다. “커트를 잘 주면 되지 않느냐? 커트를 고치면 되지?”라는 교과서에 나올법한 조언은 가뜩이나 커트에 주늑 들어 있는 내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커트가 그렇게 금방 잘 되냐고요?
나는 선택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잘 되는 백 드라이브를 강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저 바닥에 있는 커트 기술부터 다시 시작할 것인지. 단점을 부여잡고 치열하게 싸울 의지가 강한 인간이 아니기에 그나마 조금 더 나은 백 드라이브를 강화시키기로 마음먹었다. 마음 편한 방법을 선택했다. 우선 탁구 로봇의 커트 공을 짧은 길이. 어중간하고 애매한 길이, 탁구대 끝 라인에 떨어지는 긴 길이 등으로 세팅한 후 백드라이브 거는 연습을 시작했다. 거의 매일 20분 이상을 반복했다. 길이가 다른 커트 공으로 백 드라이브 거는 레슨도 병행했다. 그렇게 몇 달을 반복하자 어느 날부터인가 레슨을 받는데 어느 길이에서건 백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레슨이지만 미스하는 비율이 줄고 성공률이 높아지는 걸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럼 레슨실 밖에서는 어땠을까? 기계실과 레슨실에서 키워진 자신감 때문인지 상대의 리시브를 백 드라이브로 거는 게 예전보다 한결 편해졌다. 상대의 서비스 박자를 타서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를 하는데 이게 뭐라고 성공하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 상대에게 선제를 주지 않았다는 생각에 더 좋은 건지도 모른다. 이렇게 백 드라이브에 자신 있어지니 ‘이제 커트로도 한 번 넘겨 볼까?’라는 여유도 생겼다. ‘난 커트를 못해’ 자책하며 커트로 리시브하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백 드라이브 리시브 성공률이 높으니 커트로 넘겨 드라이브를 두드려 맞아도 그리 동요되지 않았다. 다시 자신 있는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하면 되니까. 커트는 중간중간 다시 도전해 보면 되니까. 믿는 구석이 생겼다고나 할까? 믿는 구석이 있다는 게 이리도 든든하다니!
만약 내가 바닥 수준인 커트부터 바꾸어 나가려고 했다면 이런 여유가 생겼을까? 아마 스트레스받아서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한참 헤맸을 것이다. 내게는 단점을 부여잡고 스트레스받는 방식보다는 그나마 내게 있는 장점을 강화시키는 방법이 맞았던 거다. 장점이 강화되다 보니 따스한 마음으로 단점을 마주할 용기도 생겼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자신이 흥미를 지닌 분야의 일을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추구해 가면,
지식이나 기술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방법이 뭔지 아는 게 중요하지.
*백핸드 드라이브(backhand drive) : 셰이크핸드 라켓을 사용하는 선수가 백 사이드 쪽으로 이동하는 공에 백핸드 스트로크로 강한 전진 회전을 걸어 득점하는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