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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탁구는 계급사회?(1)

(부수에 대하여)

by 하늘

부수라는 체계가 있는지 몰랐다. 탁구를 시작하고 나서야 그런 게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탁구는 계급사회라고 해도 무방하다. 지역마다 다르지만 최상위 부수인 1부부터 최하위 부수인 8부까지의 계급이 존재한다. 라켓을 잡자마자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8부로 불렸다. 자연스럽게 8부에서 어느 부수로까지 승급하느냐가 목표가 된다. 탁구라는 세계에 들어온 이상, 탁구라는 운동을 선택한 이상 이러한 부수체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즐탁(즐기면서 탁구 칠래요)을 선언한 탁구인을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경쟁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향의 내가 어쩌자고 탁구를 시작해서, 어쩌자고 탁구에 미쳐서 이러한 부수체계 속 8부라는 점 하나가 되었는지 생경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목표 역시 내가 정하지 않았다. “올해 목표가 7부 승급이야? 아니면 00을 이기는 거야?”라고 묻는 한 상위부수에게 “포핸드 드라이브 완성도를 높이는 게 목표인데요?”라고 답했다가 내 말에 어이없어하던 뜨악해하던 그의 얼굴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그렇게 대답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이 세계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승급이던가 누구를 이기는 것이 목표여야 했다. 승부의 세계에서 목표란 모름지기 이런 것이어야 했다.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목표 따위는 혼자 간직하고 키워야 하는 나만의 바람이어야 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입 밖으로 굳이 목표를 말하지 않는다.

목표는 다르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탁구라는 운동을 애정한다. 연습을 통해 탁구 기술들이 날마다 조금씩 늘어가는 걸 몸으로 느낄 때마다 그런 기술들이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나올 때마다 몸서리쳐지게 기분이 좋다. 경쟁을 싫어할 뿐 승부 내는 걸 싫어할 뿐 탁구를 싫어하는 게 아니다. 게임하는 걸 싫어할 뿐 연습하는 건 그 누구보다 좋아한다. 이런 인간이 이러한 시스템 안에 있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쟁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경쟁하면서 성장하는 게 당연하다. 다만 기질에 맞지 않을 뿐이다. 일명 계급사회에서 경쟁하지 않고 탁구 치는 게 가능할까?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 나는 그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는 건가?

가끔은 ‘내가 꼴통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걸 너는 뭐가 그렇게 힘든 거냐?' 자책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직은 승급이라는 목표를 받아들이기 부담스럽다. 승급을 위해 탁구를 치고 누군가를 이기기 위해 탁구를 칠 자신이 없다. 그런 마음이 먹어지질 않는다. 그런데 어쩌자고 탁구를 좋아해서 이 사달이 났냐고?


그럼에도 알고 있다. 어느 순간 제 발로 뚜벅뚜벅 승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리란 것을.

그때까지 있는 힘껏 버티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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