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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란 놈이 찾아왔다

by 하늘

탁구장에 가기 싫다.

레슨을 받아도 잘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연습하는 게 재미없다.

탁구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3년 6개월 만에 찾아온 슬럼프의 증상들. 탁구를 배우면서 가장 큰 즐거움은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씩 성장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었는데 그러한 기쁨마저 사라졌다.


연습 파트너와 정해진 시스템을 연습하고 있다. 그가 나의 백 쪽으로 백핸드를 보내면 나는 돌아서 포핸드 스매싱을 한다. 오늘도 여지없이 상대방 라켓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무조건 도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저 멀리 관장님이 “상대방 라켓에 공이 맞는지 확인하고 돌아야지”라며 한숨을 쉬신다. 그걸 누가 모르나? 말이 쉽지 멀티가 안 된다. 온 신경이 돌아서 공을 치는 타이밍에만 쏠려 있다. 돌아서 치는 것도 어색한데 상대방 라켓을 볼 여유는 더더욱 없다. 라켓을 보고 돌아야지 다짐하지만 이미 몸은 자동으로 돌고 있다. 라켓 보는 거 따로, 도는 거 따로. 합체가 되지 않는다. 돌아야 할 공과 돌지 말아야 할 공을 골라 쳐야 하는데 무조건 돌고 본다. 어찌 그리 극단적인지, 도는 것에만 꽂혀 있다. 꽂힌 게 있으면 그것만 냅다 들이 파는 기질이 연습에서도 여실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듯 슬럼프가 온 가장 큰 이유는 백 쪽에서 돌아서 치는 연습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게임 중 화백(포핸드를 화, 백핸드를 백이라고 줄여서도 부른다) 밸런스가 거의 미스가 없다는 감각이 있었는데 백 쪽에서 무리하게 돌아서 치려고 하니 포핸드 쪽에 구멍이 났다. 자연히 범실도 많아지고 게임도 예전보다 잘 되지 않는다. 새 기술 하나 얻으려다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들마저 휘청거린다. 돌아서 치는 기술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인데 정신을 못 차린다. 그야말로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이렇게 쉽게 기존의 것들이 무너지다니. 스트레스는 점점 쌓여가고 자연스레 슬럼프란 놈이 찾아왔다.



화백 밸런스를 얻는데 3년 이상이 걸렸다. 쉽지 않았다. 반복의, 반복에 의한, 반복을 위한 나날들이었다. 돌아서 치는 연습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시간을 더 들여야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기술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있는데 더 열심히 하라는 것 같아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부아가 난다. 여기서 어떻게 더 열심히 하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해? 탁구 선수될 거야?’ 라며 스스로에게 시비를 건다. 따지기 시작한다. 심지어 “왜 하루 종일 탁구장에서 살지? 빈정대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 연습이 꼭 필요한가?’라는 본질적인 질문도 해본다. 관장님은 “언제까지 화백만 할 거야? 상위 부수 중 돌지 않고 게임하는 사람 본 적 있어? 돌아서 쳐야 할 때가 왔어."라고 말한다. 탁구 유투버이자 코치인 임창국은 총을 예로 들며 "화백 두 개의 총을 가진 사람과 화백은 물론 백 쪽에서 돌 수 있는 총을 하나 더 가진 사람 중 누가 더 유리하겠냐? 앞으로 탁구가 발전하려면 돌아서 치는 연습이 병행되어야 한다."라고 쐐기를 박는다. 그래. 총 세 개가 더 위력적이긴 하지. 해야 할 연습인 건 분명 맞다. 모르는 게 아니다. 돌아서 치는 게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들에 언제쯤이면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하라고 하니까, 달리고 있는데 계속 달리라고 하니까 투정이라도 왕창 부리고 싶은 거다. 내가 뭐 탁구 치는 기계도 아니고.


슬럼프가 찾아왔음에도 징글징글한 탁구에 대한 미련 때문에 발걸음은 저절로 탁구장으로 향한다. 감정 중에 미련만 한 것이 없다더니 몸소 실천 중이다. 슬럼프에 빠졌다는 걸 한 사람도 모르는 사람이 없게 “저 슬럼프예요. 슬럼프가 왔답니다.”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기 시작한다. “되던 탁구도 안되고 정말 미쳐버리겠어요.” 투정을 부린다. 그러자 “나도 그런 적 있다. 슬럼프를 거쳐야 성장한다. 나는 슬럼프 때 이렇게 했다.” 등등 각양각색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중 가장 위로가 되는 건 ‘내가 겪었던 걸 너도 겪고 있구나’라는 눈빛이다. 말보다 더 강한 그것이 조용히 나를 다독여준다. ‘그래. 나만 겪는 건 아니지.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오지.’라며 내게 찾아온 그놈을 멀찍이 서서 쳐다보려 한다. 거리를 좀 두자고.



다른 이들의 생각도 찾아본다. 강사 김미경은 “슬럼프를 안 겪은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다. 얼마나 한 게 없으면 슬럼프를 안 겪나? 슬럼프가 왔다는 것은 슬럼프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는 의미이며 거의 다 됐다는 신호다. 무엇인가 될 때까지 열심히 했는데 해도 안 되니까 속상하고 화가 나는 거다. 슬럼프가 오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냐? 슬럼프라는 것 자체가 귀중하다.”라고 말한다. "슬럼프가 오기까지 얼마나 고생했냐?"는 그녀의 말에 갑자기 울컥한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다. 나 역시 열심히 했기 때문에 슬럼프가 있는 곳까지 걸어간 건가? 위로받는다. 슬럼프란 놈은 그럼 내 노력의 결실?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그녀는 “슬럼프는 수십만 번 누가 더 많이 지나가느냐의 게임이며 내 슬럼프를 직시하고 다음에 반드시 무엇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넘어가는 게 중요하다.”라고 조언한다. ‘슬럼프 뒤에 반드시 무엇이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을 잃어버려 이렇게 헤매고 있나?



어찌 되었든 슬럼프도 내 노력의 결실이며 ‘거의 다 됐다’라는 신호라는 걸 알고 있다면 슬럼프란 놈이 찾아왔을 때 감정적으로 덜 힘들겠지? 또한 슬럼프의 반복이 나를 성장시키는 반복된 사이클이라는 것을 머릿속에 입력하고 있다면 수월하게 이놈을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슬럼프 후 더 성장한 내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보려 한다. 믿나이다. 믿겠습니다. 주문을 외운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이란 그리 단순하지 않아서 이렇게 정신적으로 중무장을 한다고 해서 간단하게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만한 놈이 아니다. ‘그저 조금 덜 힘들게 넘기지 않을까?’라는 소박한 기대를 할 뿐. 알고 당하는 거랑 모르고 당하는 건 다르니까.



낼만큼의 짜증을 내고 탁구장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낸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자 다시 시작해 볼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온다. 현실은 바뀌지 않았고 해야 할 연습은 그대로다. 하지만 마음껏 감정 표출도 하고, 슬럼프에 대해 찾아보기도 하고 묻기도 하면서 좀 쉬었더니 ‘다시 달려볼까?’라는 마음이 생긴다. 충전이 필요했나? 아니면 다시 달리기 위해 신발끈을 고쳐 맬 시간이 필요했나? 정신적으로 재무장할 시간도 필요했겠지. 앞으로도 슬럼프란 놈은 주기적으로 찾아올 것이다. 그걸 어떠한 마음으로, 어떠한 태도로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할 뿐. 어차피 반복될 사이클이라면 다음에는 어떠한 방식으로 통과해 나갈지 다음 슬럼프도 한 번 기대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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