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수님과 연습 중이다. 게임 때와 똑같이 서비스를 번갈아 두 개씩 넣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리시브하거나 공격하는데 점수를 매기진 않는다. 이러한 연습을 하는 이유는 게임 때는 이기기 위해 시도하지 않을 새로운 기술들을 연습하기 위해서다.
요즘 공격적인 리시브 방법인 백핸드 드라이브(백 드라이브)에 푹 빠져 있다. ‘내 사전에 커트는 없다.’라는 무모함으로 상대의 서비스가 길면 무조건 백 드라이브를 한다. 고수님이 커트 양을 많이 줘 서비스를 넣어도 그 무거운 걸 백 드라이브로 들어 올리겠다고 끙끙대며 안간힘을 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요즘의 내가 딱 그렇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이러한 반복을 통해 ‘이 기술이 온전히 내 것이 된다면 탁구를 더 풍성하게, 더 다양하게 칠 수 있겠지?’라는 희망으로 잦은 실수가 나와도 재미있다.
한참을 함께 연습하던 고수님이 답답했던지 “본인이 탁구 선수야? 선수들도 그렇게 다 백 드라이브를 하진 않아. 커트 양이 많은 서비스는 커트만 해서 넘겨줘도 상대방이 그걸 감당하기 힘든데 도대체 왜 무리하게 백 드라이브를 거는 거야?”라고 묻는다. “백 드라이브로 리시브하는 법을 레슨 받고 있어 이걸 좀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싶어서요.”라고 답하자, 그는 이 문제를 게임에서의 확률로 확대한다. “실제 게임에서라면 5개 중 2개 정도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다 실수할 거야. 그럼 이런 공은 당연히 커트로 넘기는 게 안정적이고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 아냐?”라고 말한다.
물론 그 방법이 안전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는 지금 게임에서 당장 이기는 방법이 아닌 새로운 리시브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탁구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반복 연습을 통해 기술들을 하나씩 내 것으로 만들어가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다. 서툴고 완벽하진 않아도 그 기술에 근접해 가고 있다는 느낌, 어제보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감각이 좋다.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우연히 탁구 유튜버 탁뀨의 <탁뀨 TV>에서 국가대표 정영식 선수 인터뷰 영상을 보게 되었다. 탁뀨는 그에게 “저는 요즘 치키타에 꽂혀 있어요. 멋있으니까 일단 하고 보거든요. 저는 그게 재미있는데 주변에서 게임에서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 말래요. 그런데 저는 이기면 좋지만 져도 좋거든요. 생활체육인이 치킨 타를 해야 할까요?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할까요? ”라고 묻는다. 그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치키타는 공이 바나나 같은 곡선을 그리며 빠르게 나아가도록 치는 기술로 탁구 선수들이 구사하는 난이도 높은 기술이다. 생활체육인들도 치키타 기술이 멋있기 때문에 이 기술을 구사하고 싶어 한다. 정영식 선수는 “재미있어서 탁구 치잖아요. 재미있으면 뭐든 해도 돼요. 사실 그게 승리자예요. 항상 이기기 위해 탁구를 했기 때문에 이겼어도 재미를 못 느낄 때가 많았어요. 순간 이겼다는 안도만 할 뿐 재미가 없었어요. 10년 전 게임에서 그때 이겼느냐, 졌느냐는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좀 더 재미있게 승리해야 했는데 그게 인생에 있어서 더 큰 성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재미있으면 뭐든 해도 돼요. 사실 그게 승리자예요.”라는 정영식 선수의 말. 내게는 재미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뭐든 해도 좋다는 말로 들린다. 역시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게임에서 지더라도 하고 싶은 백 드라이브를 마음껏 해도 괜찮다는 허락처럼 들린다. 지나간 게임 결과가 인생을 사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말 또한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어제 이겼다고 해서 오늘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게 탁구 경기다. 어제의 경기가 오늘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게임은 그렇게 매일매일 흘러간다. 그렇다면 더더욱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은 정영식 선수의 조언이 자기 합리화의 근거가 되어 주었다. 합리화도 참 잘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 천군만마를 얻었으니, 실수를 하더라도 재미있는 백 드라이브를 마음껏 시도해 봐야겠다. 요즘 내게 이것만큼 재미있는 건 없다. 백 드라이브를 시도하다 지는 거니까 게임에서 져도 괜찮다. 어쩌면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건 본성에 가까운 ‘재미’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