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인간의 놀라운 인체의 신비)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다. 근육량이 지난 해 보다 2킬로그램 늘었단다. 200그램이 아닌 2킬로 그램? 결과지를 다시 보았다. 놀랍다. 운동을 시작하고 나서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선 첫 번째는 나도 몰랐던 순발력의 발견이다. 탁구 칠 때 나도 모르게 반응하는 순간들이 있다. 이걸 순발력이라고 하는데 평상시에는 그런 것이 내 몸에 탑재되어 있는지조차 모르고 살았다. 탁구라는 운동을 통해 반세기 동안 내 안에 꽁꽁 숨겨져 있던 내 몸의 신비를 알아가고 있다. 두 번째는 레슨 받은 것이 게임 중에 무의식적으로 나올 때다. 레슨 때 익혔던 감각이 게임 중에 저절로 구현되는 것이다. 이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다. 예전 코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게임 중에는 생각할 시간이 없다. 무조건 많이 때려 박아서 몸이 저절로 반응하게 해야 한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제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마지막으로 고통을 즐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다. 지금의 코치는 청소년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다. 볼박스 시 공의 속도와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빠른 공을 쫓아다니느라, 낮은 공을 맞추기 위해 있는 힘, 없는 힘 쥐어짜 레슨을 마치고 나오면 다리는 후들거리고 몸은 흠뻑 땀으로 젖어 옷을 갈아입어야 할 정도다. 또한 공을 던져 줄 때마다 매번 팔짝팔짝 뛰면서 치는 스타일이라 남들보다 두 배 이상 힘들다. 매회 레슨이 체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일이다. 숨이 턱턱 막힐 걸 알기에 레슨 전 마음은 늘 무겁다. 하지만 레슨이 끝나면 어려운 걸 해냈다는 성취감이 주는 기쁨에 나도 모르게 광대가 승천한다. 반세기를 살아온 내게 아직 이만한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에 더 기뻐하는지도 모른다. 분명 얼굴은 땀으로 번들거리고 몸에서는 쉴 새 없이 땀이 흐르고 다리는 후들거려 휘청거리는데 기분은 좋다. 마조히스트는 '신체적으로 가해지는 고통에서 성적 쾌감을 얻는 이상 성욕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내 안에 마조히스트적인 욕망이 있는 걸까? 이러한 레슨 방식으로 1년을 보낸 나는 탁구 승급이 아닌 '2킬로그램의 근육량 증가'라는 상장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기술 성장이 아닌 내 안에 있는 근육 성장의 한 해라고 볼 수 있다. <내게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이자 23번이나 마라톤 풀코스를 뛴 러너이다. 그는 "오랫동안 달리기를 계속하면 신체 근육의 배치가 완전히 달라진다. 신체구조가 나날이 변화를 겪고 있다는 감촉이 흐뭇하다."라고 했는데 나 역시 이러한 신체 변화가 흐뭇하다. 나만이 느끼는 느낄 수 있는 이러한 감각을 죽기 전에 알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2킬로그램의 근육을 얻게 된 난 스윙폼이 좋은 사람도 아니요. 탁구를 잘 치는 사람도 아닌 '체력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 누구와 연습을 해도 쉽게 지치지 않기에 한 회원은 "체력이 정말 최고다. 아마 레슨도 한 시간은 받을 수 있을 거다."라고 감탄한다. 이 점은 내가 생각해도 저질체력이었던 과거를 돌이켜 보면 장족의 발전이다. 레슨을 통해 탁구 기술보다는 체력이 좋아졌음을 느낀다. 레슨을 받으면서 숨이 턱에 받칠 때까지 뛰어다닌 덕분이다. 근육도 이러한 과정으로 늘었나 보다. 켜켜이 쌓였나 보다. 하루키는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 동물과 비슷해서 주의 깊게 단계를 늘려 나가면 근육은 그 훈련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 무리하게 혹사를 하면 고장 나 버리므로 시간만 충분히 들여 실행하면, 그리고 단계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간다면 군소리도 안 하고 강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그 나름의 고분고분한 자세로 강도를 높여 나가며 ‘이 만큼의 작업을 잘 소화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기억이 반복에 의해서 근육에 입력되어 간다."라고 말한다. 내 경우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단계적으로 레슨을 소화해냄으로써 그 기억이 반복에 의해 근육에 입력되어 근육량이 증가한 건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체력과는 반대로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탁구 칠 때 이상한 신음 소리를 내는 것이다. 하도 낑낑거려서 "애 낳는 거 같다, 신음소리처럼 들려 민망하다, 소리 때문에 게임에 집중 못하겠다, 탁구장 밖에서 하늘 씨 소리밖에 안 들린다." 등의 민원이 빗발친다. "소리는 요란한데 그만큼 공에는 힘이 없다."라는 소리도 듣는다.
정말로 체력이 좋다면 이 소리들이 나오지 않을 텐데? 있는 힘, 없는 힘을 짜내다 보니 듣기 거북한 소리가 나오는 건 아닐까? 의심 아닌 확신에 가까운 생각도 든다. 기초체력 없는 몸에 무거운 짐을 실어놓고 몸을 혹사시키는 건 아닐까? 기초체력이 얼마나 바닥이기에 이렇게 끙끙 거리며 탁구를 칠까? 기초체력과 근육량은 별개인가? 기초체력은 큰 카테고리이고 근육량은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작은 요소들 중 하나이지 않을까?
스포츠는 과학이라는데 왜 그렇게 낑낑 대는지 알고 싶다. 배에 힘이 없어서인가? 두 발로 공중 부양하면서 탁구를 치는 것도 사실 다리를 지탱해 줄 힘이 없어서인가? 내 몸의 신비를 탐구해 가고 있는 요즘 궁금한 게 점점 쌓이고 있다. 반평생 운동이라고는 몰랐던 내가 탁구라는 낯선 세계를 내 안에 들이면서 스포츠라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 내 몸을 인식하게 되었다. 나한테도 몸이라는 게 있었네. 그 안에 근육이라는 것이, 순발력이라는 것이...... 내 몸의 신비는 과연 순조롭게 풀릴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