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탁구장에 출몰(?)하는 지역 1부가 있다.
40대 초반의 거의 미스가 없는 올라운드 스타일.
그의 특기는 공을 짧게 혹은 길게 주어 상대를 앞뒤로 움직이게 하거나 화쪽과 백쪽 코스를 가르는 공격으로 상대의 좌우를 흔드는 것이다. 앞뒤, 좌우 자유자재로 공을 주는 것도 모자라 공을 천천히도 빠르게도 주면서 박자까지 자유자재로 가지고 논다. 앞뒤, 좌우, 박자의 3종세트를 다 섞어 조합한다면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로 상대를 공략할 수 있을지.
그와 게임하는 상위부수 회원들은 구장 내에서도 최상위부수로 우리에게 늘 멋진 플레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 앞에서 그들의 플레이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공격했다 싶으면 뚫리지 않는 철벽수비로 멘털부터 나가는 게 첫 번째 수순이다. 공격해도 공이 계속 넘어오니 허둥대기 시작한다. 여기에 3종 세트인 앞뒤, 좌우, 박자로 무차별 공격이 시작되면 대부분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대체 내가 뭘 한 거지?’라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탁구대를 나오고야 만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여태 땀 흘리며 연습했던 건 다 어디로 갔단 말이냐? 에이 탁구를 접어야 하나? 허탈함과 허무함이 세트로 찾아왔다. 자존감도 몽땅 그가 가져가 버렸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나보다 실력이 나은 상위부수들도 그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 아! 찌질하다.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은 그는 5명과의 게임을 끝낸 후에야 휴식 테이블에 앉는다. 땀을 훔치는 그에게 65세의 신입 대학교수님이 그윽한 눈길로 묻는다. “시작한 지 3개월 되었어요. 얼마나 쳐야 그렇게 잘 칠 수 있는 거예요? ” 부러움이 가득 묻어남과 동시에 어떻게든 그가 그렇게 치기까지의 과정을 듣고 싶다는 간절함이 눈빛에 어려있다. “좀 더 일찍 시작했어야 했는데 늦게 시작해서 아쉽다."라는 소리를 입버릇처럼 하던 분이었다. 40대 초반의 이 젊은 1부는 질문의 요지는 비켜 나간 채 “지금도 나이에 비해 잘하고 계시는 거예요. 나이에 맞게 탁구를 치시면 돼요. 흰 공 열심히 배워서 어르신들 치시는 라지볼 잘 치시면 되죠. ”라고 답한다.
65세 신입 회원의 얼굴표정을 보니 그가 원한 대답이 아닌 듯하다. 이제 시작이고 출발인데 나이에 맞는 탁구를 치라고? 벌써 뭔가가 한정되고 한계가 정해지는 듯한 느낌. 탁린이로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희망찬 시기인데 냅다 찬 물을 끼얹는 듯한 느낌. 그가 원했던 답은 1부인 고수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그 기술들을 구사할 수 있는가에 있지 않았을까? 그걸 안다고 해서 다 따라 할 수도, 그처럼 되기 힘들지라도 그것을 향해 달려가 보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 젊은이는 나이에 맞게 치라고 한다. 60세에 달리기를 시작하고 70세에 피아노를 배우는 시대다. 그런 이들에게 나이에 맞게 달리고 피아노를 치라고 할 건가? 시작하는 마음은 다 똑같을 텐데. 사람 마음은 다 똑같을 텐데.
그런데 남의 일에 왜 그렇게 오버하냐고? 헉헉거리며 낑낑대며 뛰어다니며 탁구 치는 내게 주변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어서 그만 과몰입하고 말았다. “나이에 맞게 탁구를 쳐야지. 뭘 그렇게 뛰고 뭘 그렇게 돌아서 치려고 하는지.”
그럼 내 나이에 맞는 탁구는 뭔가?
오로지 실속 있는 탁구만 치는 건가?
인생이 실속으로만 살아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