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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커트 서비스에 대한 강박?

(윤여정: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 살아야 한다)

by 하늘

“하늘 씨는 언제 커트 서비스 넣을 거야?

본인이 커트 서비스를 넣어야 포핸드 드라이브를 하든 백 드라이브를 하든 할 것 아냐?”

가뜩이나 커트 서비스를 못 넣는다는 강박이 있는 내게 일격을 날리시는 관장님의 말은 한층 내 어깨를 움츠러들게 한다.



참 징글징글하게도 커트 서비스가 넣어지지 않는다. 관장님이 한 말 중에 “평생 커트 서비스 못 넣는 사람도 있어.” 내가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인 건가? 그 말의 저주에 걸리기라도 했단 말인가? 이 말에 갇혀 있는 것 일수도.

아! 안 되는데. 이렇듯 커트 서비스에 대한 강박이 심하다. 강박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생각이나 감정에 사로잡혀 심리적으로 심하게 압박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커트 서비스에 대해 내가 딱 그렇다.

수시로 연습 파트너에게 커트 양을 물어본다.

“커트 서비스 넣어 볼게요. 커트 양이 얼마나 되는 거 같아요?” “아주 조금이요. 10중 2 정도?” 에고 아직 멀었군! 커트 서비스만 냅다 연습하다가 주력 서비스인 빠른 드르륵 서비스가 제대로 들어가질 않아 게임 자체가 흔들린 적이 있다. 커트 서비스는 물론 주력 서비스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니 잘 되던 공격도 안 되고 미스가 속출했다. 그러니 자신감은 사라지고 대세는 완전히 기울었다. 탁구란 것이 한쪽에만 쏠리면 바로 밸런스가 무너진다는 걸 뼈아프게 경험했다. 그래서 주력 서비스는 가져가면서 서서히 커트 서비스의 비중을 늘려 가기로 작전을 바꿨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지역의 3부 고수님이 구장에 왔다. 다른 회원들과의 게임 후 드디어 내게도 차례가 왔다. 역시 게임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커트 서비스보다는 빠른 드르륵 서비스가 편했다. 어라, 그런데 그가 내 서비스를 탄다. 매일 구박만 받던 내 서비스를 타다니! 그도 당황스러워하긴 마찬가지다. 서비스 리시브 미스가 그의 공격에도 영향을 미치더니 급기야 게임의 판도를 바꾼다. 결국 3대 0으로 이겼다. 게다가 심판을 보던 회원이 “하늘 씨의 빠른 서비스를 배워야겠어.”라며 내 서비스를 칭찬한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 그 말이 어찌나 달콤하던지 그간의 설움이 한방에 씻겨 내리는 듯하다.



관장님께 쪼르르 달려가 웃으며 말을 전한다.

“관장님, 저 언니가 제 서비스 배우고 싶대요.”

'그래도 제 서비스가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라고요.' 관장님께 인정을 갈구한다. 그러면서 우쭐해한다. “ 드르륵 빠른 서비스만 넣다 보니 그 부분이 특화되었나? 모서리 엔딩라인에 잘 들어가긴 하지.” 거만해지기 10초 전. 어깨 뽕 올라가기 5초 전. 사람 마음이 이리도 간사하다.


며칠 후, 시에서 열리는 장애인 탁구시합에 참가하기 위해 관장님 친구인 장애인 국가대표 한 분이 구장에 왔다. 그가 게임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특히 그의 서비스를 눈여겨보았다. 감사하게도 게임을 한 번 해 주신다고 해 그의 서비스를 받는데 공이 튕겨져 나간다. 서비스 자체를 아예 받을 수 없다. 그런데 커트 서비스 없다. ㅇnly 횡서비스다.


그가 구장을 떠나자 관장님께 물었다. “ 횡서비스만 있고 커트 서비스는 없으신 것 같던데 맞나요?” 관장님은 “맞아. 순수한 커트 서비스는 안 넣는 것 같더라고.” 커트 서비스를 넣지 않고도 국가대표가 되었다고? 1부가 되었다고? ‘그럼 커트 서비스만이 답은 아니다라는 거잖아.' 이러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 커트 서비스에 강박이 있는 나로선 새로운 발견이었다. 그렇다고 커트 서비스를 연습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커트 서비스라는 나의 틀에 스스로를 가두고 종종 대지 말아야지. 너무 몰아대지는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야기다.


그가 횡서비스로 자신의 서비스와 서비스에 이은 플레이 스타일을 만들었듯 나 역시 서비스와 서비스에 이은 플레이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해 봐야겠다.


배우 윤여정의 말이 떠오른다.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 살아야 한다." 서비스를 만들어 가는 과정 자체도 나답게 살기 위한 과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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