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탁구 친 지 얼마나 되셨어요?

by 하늘

“저 정도 치려면 얼마나 쳐야 해요?”

한 여성 신입 회원이 탁구 치는 내 모습을 유심히 보더니 관장님께 묻는다.

“빡 세게 5년 정도 치셔야 해요.” 어라! 으레 하는 답이 아니다. 원래 관장님의 레퍼토리는 이제 막 시작하는 신입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다음과 같았다. “열심히 치시면 금방 잘 칠 수 있어요. 탁구장에 자주 오시면 됩니다.”였다. 하지만 그날 그 말은 내게도 의외였다.

거의 매일 저녁 8시에서 10시에 탁구를 친다. 웬만해서는 이 짧은 2시간 동안 거의 쉬지 않는다. 탁구 로봇과 연습을 하거나 파트너와 시스템 연습 또는 3구 연습을 한다. 돌아서 스매싱을 하면서는 특유의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이게 그만 나의 시그니처가 돼버렸다. 탁구장 문을 열고 들어오는 회원은 “탁구장 밖에서도 누님의 아! 아! 하는 소리가 들린다.”라며 놀리기도 하고 “오늘은 너무 조용하신 거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아직 소리 지르는 구간이 아니에요.” 맞받아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처음엔 그렇게 창피해하더니 유머로 승화를 시킨 건지 아님 뻔뻔해진 건지? 이렇듯 탁구장을 끙끙 거리며 뛰어다니는 내 모습이 관장님에게도 빡 세게 느껴진 것일까? “뭘 그리 열심히 치세요?”라는 회원들 말은 간간이 들어왔지만 관장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는 건 처음이다.

그렇다면 빡 세게 5년 탁구 친 자의 실력은? 글쎄다. 초보라고 하기엔 애매하고 중수라고 하기엔 부족한 어느 지점 한가운데 서 있다. 함께 탁구를 쳤던 언니의 말이 떠오른다. “5년 되었는데 고수랑 시합할 때 매번 초보라고 말하고 있는 내가 정말 싫다. 언제까지 초보라고 말해야 되니?” 그럼 당당하게 “중수입니다”라고 말해야 하나? 아니면 “5년 정도 쳤습니다.”라고 말해야 하나? 구력이 있어 초보자라 말하기엔 민망하고 중수라고 하기엔 실력이 모자라.

지금의 내가 딱 그렇다. 하루하루 빡 세게 치는데 눈에 보이는 성과는 미미하다. 그럼에도 작은 변화가 있다면 게임 중 나도 모르게 백 쪽에서 돌아서 스매싱을 해서 득점하는 빈도수가 높아졌다. 이렇게 하기까지 백 쪽에서 돌아서 상대의 백 쪽, 화쪽으로 스매싱하는 연습을 1년 넘게 해 왔다. 징글징글하게 했고 지금도 매일 연습 중이다. 이 시스템이 탁구 스타일을 더 풍성하게 만들기 바라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나 역시 구력을 묻는 누군가의 질문엔 “5년 되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5년이나 되었는데 그것밖에 못 치냐?’라는 의구심 가득한 눈빛이 대답으로 돌아올까 두려워서다.

비단 나뿐일까? 고수들에게 같은 질문을 해도 마찬가지다. 어느 고수는 “탁구 친 지 10년 되었다. 하지만 중간에 2년 정도 쉬었다.”라며 탁구를 치지 않은 '2년'을 힘주어 말한다. 구력이라는 게 탁구 라켓을 잡은 순간부터가 기준이라 너도 나도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된다. "그때는 열심히 안 쳤다."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탁구를 쳤다." "본격적으로 탁구를 친 건 언제부터다." 등등. 어떻게 해서든 구력을 최대한 줄이려 한다. 10년이 넘었는데도 부수 승급을 못한 회원은 자신의 구력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혹시라도 상대의 눈빛이 “그동안 대체 뭘 하셨어요?”라고 물어올까 봐.

탁구를 쳐 본 사람이라면 구력 대비 실력이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알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상은 정반대로 흘러간다. 서로가 서로의 구력을 물으며 평가하느라 여념이 없다. 5년 차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고, 10년 차면 이 정도 되어야 하고. 저 사람은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되었는데 엄청 빠르고. 마치 구력이 모든 걸 말해준다는 듯 구력 대비 실력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래봐야 내가 쏘아 올린 ‘구력’이라는 화살에 내가 맞을 텐데. 그대로 내게 돌아와 나를 평가할 텐데.

그래서 어쩌라고? 그냥 그렇다고요. 오늘은 그냥 구력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고요.


왜 자신 있게 탁구 친 지 5년 되었다고 말을 못 하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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