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MZ세대의 아이콘인 래퍼 이영지와 FC 밀란 소속 축구선수 조규성이 그녀의 유튜브 방송에서 나눈 대화다.
“재능 있는 선수들은 여기까지 수월하게 와요. 노력하는 선수들은 여기까지 진짜 힘들게 와요. 그런 다음 이제 재능 있는데 노력까지 하는 사람은 못 이긴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저는 재능 있는 선수는 아니거든요.”
“저는 축구에 대해 잘 몰라서 어떤 부분에서 재능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는지 잘 이해할 수 없지만 노력하는 재능이 있으신 거잖아요. 저는 오히려 그 재능이 살짝 부족해요. 저는 신체적인 조건을 타고났지만 제가 생각하는 기준치만큼 노력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노력하는 재능이 너무 부러워요. 그래서 만약에 혹시 재능 있는 사람의 벽을 뚫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신다면 노력이 진짜 미친듯한 재능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항상 논란이 되는 재능과 노력에 대한 또 다른 버전의 이야기. “노력이 진짜 미친듯한 재능”이라는 그녀의 말에 꽂혔다. 타고났다는 그녀에게서 듣는 “노력하는 재능이 부럽다”라는 말. 노력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었던가? 노력이라는 단어가 드디어 재능의 범주에 들어간 건가?
왜 그녀의 말에 꽂혔을까? 딱히 잘하는 것도 없고 할 줄 아는 거라곤 꾸준히 오래 하는 것밖에 없는 인간이라 그렇다. 이런 인간이라는 걸 안지도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글쓰기 수업에 가면 마치 통과의례처럼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전업주부 이력 말고 나라는 인간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딱 한 가지였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에 거의 결석 없이 10년을 참석했다는 사실. 그렇게 성실하게 모임에 참여했는지도 솔직히 나를 소개하면서 알았다. 그렇게 나에 대해 무지했다. 재능이 없으니 본능적으로 성실함으로 간극을 메꾸려 했는지도 모른다.
탁구 또한 마찬가지다. 탁구를 시작한 지 5년 차. 거의 매일 저녁 탁구장으로 출근한다. 명절 빼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결석하지 않는다. 한번 시작했으면 꾸준히 성실하게 하는 인간이라는 걸 탁구를 하면서 다시 한번 알았다. 재능은 없지만 매일 숨이 차게 뛰어다니며 노력이라는 걸 하고 있다. 회원들부터 “연습하는 거 지겹지도 않냐? 체력은 아마 탁구장에서 제일 좋을 거다. 허벅지 굵기는 이미 선수급이다. 기합 소리만 들으면 3부다.”라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내 노력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형태의 버전이다.
연말이면 문구점에서 파는 상장 종이에 이름 박아서 개근상을 달라고 관장님께 조르기도 한다. 이러니 어떻게 그녀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게도 노력이라는 미친 듯한 재능이 있었다니!
그런 재능을 가진 지도 모른 채 살고 있었구나!
이제라도 마음껏 발휘해 봐야겠다.
이렇듯 삶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야말로 한 끗 차이다.
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는 내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와 연결된다. 이제부터 나는 미친 듯한 재능을 뽐내는 사람이다. 벌써부터 기분이 좋아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