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여자부 대회에 나가야지 왜 혼성 대회에 출전해요? 입상이 목표 아니에요?”
여러 번 지역 오픈 대회에 나가 입상한 적 있는 고수님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입상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데? 역시 입상자의 마인드는 다르군! 그저 단순하게 생각했다. 처음 본 사람과의 게임을 통해 작년 대비 탁구 실력이 나아지긴 했는지 탁구 스타일이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는지 궁금했다. 작년에 이순신배 오픈대회에 나갔으니 비교하기 쉬울 것 같았다.
연습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시스템 연습과 3구 연습만 하는 바람에 연습이 지겹기도 했다. 평소에 징글징글하게 안 하는 서브 연습도 이번 참에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이번 대회는 늘어질 대로 늘어진 탁구 일상을 환기시킬 수 있는 일종의 장치라고나 할까? 일상이 권태로우면 여행을 가야 하듯 일상적인 연습이 지루하니 탁구대회에 출전하기로 했다. 떠나봐야 잘 살고 있는지 한 번이라고 생각해 보듯 대회에 나가 봐야 내가 치고 있는 탁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것 같았다. 제대로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대회에 나가기 전 연습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하고 싶었다.
그럼 대회 전 무엇에 집중했나?우선 백 쪽에 빠른 서비스를 넣고 백 쪽으로 리턴되어 오는 공을 백 쪽에서 돌아 화쪽과 백 쪽으로 스매싱하는 연습에 주력했다. 매번 하던 연습이기에 게임에 적용해 내 스타일로 굳히고 싶었다. 일명 백 쪽에서 돌아서 코스 가르는 스매싱으로 점수 내기. 연습 파트너는 “누가 그렇게 치라고 공을 주나? 돌면 화쪽이 비잖아.” 라며 비관적이었지만 기어이 내 탁구 스타일 중 하나로 만들고 싶었다. 지금은 안 되더라도 되기만 하면 기술 하나가 추가되니 탁구 스타일이 풍성해지리라.
당연히 화쪽으로 리턴해 오는 공 역시 상대의 화쪽과 백 쪽으로 스매싱하는 연습을 추가했다. 화쪽에서 코스 가르는 스매싱으로 점수 내기. 그나마 이건 백 쪽에서 돌아서 스매싱하는 것보다 쉽기에 드디어 3구 연습 때 점수를 내기 시작했다. 상대가 정신을 못 차린다. 화쪽으로 올 줄 알았는데 백 쪽으로 오고, 백 쪽으로 올 줄 알았는데 화쪽으로 온다며 갈팡질팡한다. 드디어 지겹게 연습했던 것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건가?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기분이 좋지? 얼굴에 미소가 번지려는 찰나 자칫 상대에게 오만하게 비칠 까 태연한 척 하지만 걸음걸이부터가 달라졌다. 교만이 묻어나는 발걸음.
그럼에도 백 쪽에서 돌아서 스매싱하는 건 미숙하다. 돌아서 상대의 백 쪽으로 스매싱을 한다고 했는데 상대가 화쪽으로 빠르게 빼 버리면 공을 쫓아가지 못해 놓쳐버리기 일쑤다. 게임에서 제대로 나오려면 한참이나 멀었다. 더 많은 연습과 더 많은 실패를 겪어야 한다. 얼마큼 연습해야 나오는지는 내 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기에 누구보다 잘 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걸 꼭 내 걸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끈질긴 열망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한참 유행하던 말인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란 게 내게도 존재한단 말인가?
그래서 대회결과는 어찌 되었냐고? 연습한 대로 잘 되었냐고? 그럴 리가. 예선 탈락했다. 그렇게 한 달 반 연습하고 본선 진출할 것 같으면 탁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거다. 탁구라는 세계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내가 연습할 때 다른 사람들은 놀고 있나? 두 사람과 게임 했는데 연습한 게 2-3개 정도 나왔다. 한 번은 서비스를 넣고 백 쪽에서 돌아 상대의 백 쪽으로 스매싱을 연달아 쳐 점수를 냈다. 상대는 물론 관중도 ‘나이스’를 외쳤다. 어려운 걸 해냈다는 생각에 날아갈 듯 좋았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라는 신호탄 같았다. 이런 스타일로 탁구를 쳐보겠다는 신호탄.
얼마 전 읽은 류은숙의 <아무튼 피트니스>에 있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에 꽂혔다. “어리석은 자가 그 어리석음을 고집하다 보면 현명해진다.” 그가 말한 어리석은 자가 바로 나다. 주변에서 소용없다고 그렇게 공을 안 준다고 해도 한번 해 보려 한다. 그냥 그렇게 치고 싶다.
이렇게 쿨하게 글을 끝내면야 좋겠지만 사람 마음이란 게 어디 그런가? 감정은 또 마음과 달라서 예선전 탈락의 아픔을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달랬다. 아무리 신호탄이라고 쳐도 패배는 패배니까. 져서 기분 좋은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도 연습한 건 몸에 남아 있을 거야’라는 자기만족을 안주 삼아 마시고 또 마셨다. 결과에 묻혀 아무도 칭찬해 주지 않을 한 달 반 동안의 노력을 다독이면서.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