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무엇이 달라졌을까?

by 하늘

거의 4년 만에 나타난 6부 고수님.

관장님 옆에 앉아 있던 그가 반색을 하며 손을 내미는데 마치 어제 본 사람처럼 낯설지 않다. “아이고! 이게 몇 년 만인가요? 잘 지내셨어요?” 그는 타 지역에서 관장님의 드라이브를 배우겠다며 주말마다 레슨을 받으러 왔는데 초보 회원들을 많이 쳐줘 인기가 많았다. 나 역시 탁구를 시작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그를 만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어느 날부턴가 사업을 하신다고 안 보이더니 코로나까지 겹쳐 4년 만에야 얼굴을 보게 된 것이다. 코흘리개 시절 스승님이었던 그는 라켓을 들더니 “얼마나 늘었는지 한 번 확인해 볼까요?”라며 앞장을 선다.

구장 사람들과는 자주 연습하기에 솔직히 내가 어떤 스타일로 탁구를 치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라던지 낯선 사람과 탁구를 쳐봐야 내 탁구 스타일이 어떠한지,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나마 객관적으로 알 수 있다. 포핸드, 백핸드 랠리에 이어 고수님의 드라이브도 받아 주면서 가볍게 몸을 풀었다.

그는 게임을 제안했다. 그에게 “죄송해요. 연습하느라 평상시에 구장 회원들과도 게임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고수님과 게임을 하면 회원들에게 미안할 것 같아요. 저랑은 연습만 하시고 게임은 다른 고수님들과 하시면 안 될까요?”라는 말도 안 되는 부탁(?)을 드렸다. 구장 회원들과 게임을 안 하기로 했다면 다른 누구와도 게임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원칙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게임보다는 연습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개인적인 선택을 위해선 일관성을 지켜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가 이렇게 말해 준 것이었다. “알았어요. 그럼 점수는 매기지 말고 서로 두 개씩 서비스 넣고 게임처럼 해 봅시다. 얼마나 늘었는지 보게.” 역시 스승님의 마음은 하해와 같이 넓으시군! 죄송하면서도 감사했다.

이렇게 해서 게임 아닌 게임이 시작되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우선 그의 애매하게 짧은 커트 서비스를 백 드라이브로 걸어버린다. ‘어라! 이게 왜 이렇게 잘 걸리지?’ 백 드라이브를 걸고 스스로에게 놀라 어안이 벙벙한데 그가 “웬만한 건 다 걷어 올리네요.”라며 칭찬을 해 준다. 옛날에는 그렇게도 못 받아 헤매던 그의 서비스 역시 웬만큼 은 다 받아진다. 웬일? 오히려 그가 나의 미스 없는 리시브에 난색을 표하고 리시브에 이은 스매싱 코스 가르기 공격에 어쩔 줄 몰라한다. 서비스를 넣고 백 쪽으로 리턴되어 오는 공 역시 돌아서 상대의 백 쪽으로 스매싱을 하고 상대의 화쪽으로도 스매싱을 시도한다. 화쪽으로 리턴되어 오는 공 역시 상대의 백 쪽과 화쪽으로 스매싱 코스 가르기를 한다. 원하는 코스로 스매싱 공격이 먹히자 자신감이 붙었는지 미스도 없다. 여태껏 연습했던 것이 드디어 나의 탁구 스타일로 만들어지는 건가? “이젠 코스 뺄 줄도 알고 진짜 많이 늘었네요. 서비스도 날카로워지고.” 입으로는 칭찬하고 있지만 그의 얼굴엔 당혹스러움이 역력하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좀처럼 보여주지 않던 서비스를 넣기 시작한다. 길고 낮으면서 빠른 커트 서비스. 하지만 탁구는 대세 싸움이기기도 하다. 이미 대세는 내게로 기울어졌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기에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처음엔 새로운 서비스에 당황했지만 박자를 맞춰 건 백드라이브가 운 좋게 성공하자 이제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다 칠 수 있고 다 걸 수 있다는 자신감이 활활 타올랐다. 이때쯤 내가 스매싱한 공을 주우러 가면서 그가 나직이 내뱉은 말. “아! 스트레스받아.” 아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걸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그동안 조금이라도 늘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뿐인데. 혼자만 신났구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오늘은 더 이상 안 되겠는지 드라이브를 받아달라며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드라이브를 걸며 한참이나 땀을 흘린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탁구대를 나와 휴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구장에서 손가락 안에 들겠어요. 많이 늘었어요.”라는 총평을 한다.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몇 년 만에 만난 고수님의 칭찬이라 그런가? 제자리는 아니라는 소리니까. 조금씩 늘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거면 충분하다. 그거면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연습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되니까.

실제 게임을 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는 걸 나도 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요. 연습이라 부담 없어서 그런 거예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지난주 핑퐁 타임 탁구대회에서 예선탈락 했는걸요. 오늘도 잘 배웠습니다. 고수님.”

재수 없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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