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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 Aug 07. 2023

한 여름밤의 탁구

레슨을 마친 후 휴식용 테이블 앞 의자에 몸을 부려 넣는다.

가뿐 숨이 정상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쉬고 있는 사람은 혼자뿐.

오늘이 며칠이었더라.

벌써 7월 31일 월요일이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밤 9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휴식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앞으로는 탁구대 네대가, 뒤로는 레슨 탁구대와 탁구 로봇이 있는 기계실이 있다.

그러고 보니 중간지대에 홀로 앉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들어 탁구장을 둘러본다. 네 대의 탁구대에 8명의 회원들이 둘씩 짝을 이뤄 탁구를 치고 있다. 랠리 연습을 하는 탁구대, 게임을 하는 탁구대, 고수가 초보를 가르치고 있는 탁구대 등 각양각색이다. 그들의 표정이 오늘따라 유난히 진지해 보인다.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오늘따라 낯설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게임이 한창인 탁구대를 보니 얼마나 집중하는지 한 회원이 입을 앙 다물고 있고, 상대는 서비스를 잘 받기 위해서인지 평소보다 훨씬 낮은 리시브 자세를 취하고 있다. 다리의 잔근육이 도드라져 보인다. 랠리 연습을 하는 탁구대에서는 일정한 리듬으로 공이 오가고 있다. 공의 왕복에서 마치 규칙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고수가 초보 회원을 가르치고 있는 탁구대에서는 탁구의 기본인 포핸드 랠리가 한창이다. 고수 앞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초보 회원의 표정은 결연하다 못해 비장하다. 탁구대를 꽉 채우고 일사불란하게 탁구를 치는 회원들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진다. 인상적인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뒤를 돌아보니 레슨실에서는 관장님이 한 회원에게 커트 공을 불규칙으로 주고 회원은 백쪽, 미들, 화쪽 어느 자리에서건 포핸드 드라이브를 거느라 레슨실을 종횡무진 뛰어다닌다. 한편 레슨실 옆 탁구 로봇이 있는 기계실에서는 한 회원이 로봇을 세팅한 후 화백 불규칙 연습을 하고 있다. 로봇이 주는 공을 따라 움직이는 그의 모습에서도 규칙적인 리듬감이 느껴진다. 힘에 부치는지 가끔 수건으로 땀을 훔친다. 그리곤 다시 탁구로봇 전원 스위치를 켠다.

      

이 삼복더위에

이 야심한 시각에  

남들은 휴가라고 다들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시기에

탁구장은 탁구에 대한 열정이 뻗친 회원들의 열기로 부풀어 오른다. 

저마다 자기 나름의 탁구를 치느라 여념이 없다.

누가 시켰으면 못 하겠지?

재미있으니까 이러고들 있는 거겠지?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일상과 유리되어 있는 세계

이런 세계가 참 좋다.

이런 세계에 있는 내가 좋다.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게 좋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 가는지

계절이 어떻게 바뀌는지

잊어버릴 만큼 뭔가에 빠져 있는 이 순간이 참 좋다.

     

언젠가는 이런 순간들이 한 여름밤의 꿈일 수도 있겠지?

지금은 존재하지만 어느 순간 인생에서 사라질지도 모르는?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에서 죽음을 앞둔 주인공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자신에게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살면서 뭘 기대했냐는 말일터이다. 

대단한 걸 기대했을까? 이런 순간들을 기대한 건 아니었을까?    


주인공 스토너는 평범한 사람으로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교수, 남편, 아버지로서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그것에 열정을 쏟으며 성실하게 살다 간 사람이다. 작가는 그의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스토너를 슬프고 불행하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의 삶은 아주 훌륭한 것이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살면서 정말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자신이 무엇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잘 알고, 마음 두고 있는 것에 정말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삶이야말로 의미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스토너 같은 보통 사람의 삶도 괜찮다고, 의미 있다고 말해준다.


나 역시 스토너처럼 대단한 성과나 성취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다 갈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두고 있는 것에 열정을 쏟고 살 수 있다면  나 같은 사람의 삶도 의미 있지 않을까? 대단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쏟고 있는 이 순간이 그렇게 좋게 느껴지나 보다. 인생 전체로 보면 어떤 뚜렷한 성과를 보여 줄 순 없을지라도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열정을 쏟고 있는 이 순간을 사랑하나 보다. 그런 사람들로 가득 찬 이 세계를 사랑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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