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2023 평창 아시아 탁구선수권 대회 직관 후기
(중국에 온 줄?)
집을 나선 지 무려 6시간 만에 경기장에 들어섰다.
여기는 9월 3일부터 10일까지 아시아탁구 선수권대회가 열리는 평창돔 체육관이다. 이번 대회를 위한 국가대표선발전을 4월에 당진 고대체육관에서 본 적이 있기에 이번 대회도 꼭 봐야 할 것 같았다.
우리나라 선수들 경기는 지난번 국가 대표선발전 경기를 통해 무려 4일에 걸쳐 보았기에 이번 대회의 목적은 세계 탑 랭커들의 경기를 보는 것이었다. 특히 은퇴가 얼마 남지 않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것 같은 마롱의 경기를 직관하고 싶었다. 올림픽 3연패에 도전하는 탁구계의 전설. 마치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듯 전날부터 설레이던 마음은 오랜 시간 버스를 타서 피곤할 법도 한데 수그러들지 않았다.
마롱과 판젠동, 쑨잉샤 등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티켓팅하는 날을 기다려 VIP 좌석을 예매했다. 손흥민이 속해 있는 토트넘의 내한 경기를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보는데 10만 원이라는 거금을 내고 본 적이 있기에 세계적인 탑 랭커 선수들의 경기를 보는데 VIP좌석 가격이 2만 원에서 4만 원이라는데 깜짝 놀랐다. 아무리 비인기 종목이라지만 싸도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부랴부랴 VIP 지정 좌석을 찾아 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게 웬일? 20-30대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금세 “짜요.(파이팅 힘내) 왕이디”이라는 함성이 경기장 가득 울려 퍼진다. VIP 좌석 대부분이 중국인들이다. 행여 한국인이 있나 두리번거린다. 한국 선수가 잘했을 때 손뼉 치는 이들이 한국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인들 틈에 드문드문 앉아 있다. 옆자리, 앞자리, 뒷자리 모두 중국인이다. “짜요”를 쉴 새 없이 외쳐대는 그들 사이에서 '한국 파이팅"이라는 말은 못 하고 박수를 크게 치는 것으로 한국 선수들을 응원한다. 아이고! 소심한 팬 같으니라고! 고개를 돌려 2층 관중석을 바라보니 1층과 2층 사이 난간에 중국 선수들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수십 개 붙여져 있다. 마롱, 판젠동, 왕추친, 린가오엔. 쑨잉샤 등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들.
그들의 애정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사진 동호회에서나 볼 법한 기다란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좋아하는 선수들의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내 옆자리 여성을 보니 왕추친의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다다다다” 연신 셔터를 누른다. 그녀의 입꼬리는 당연히 올라가 있다. 왕추친에 대한 애정이 그녀의 얼굴에 가득하다. 두나무 프로탁구리그에서 이렇게 많은 젊은 여성들을 본 적이 있던가? 우리나라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
대회 진행을 도와주고 있는 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진짜 중국인들이 많네요.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고요. 대단한데요? 한국까지 응원 온 것도 대단하고요.” 그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대회 내내 오늘처럼 매일 와서 응원해요. 대단하지요. ” 아이고야! 대회가 8일 동안 열리는데 매일 이렇게 와서 응원한다고? 아무리 탁구가 중국에서 인기 종목이라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비행기를 타고 먼 타국까지 날아와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는 그들의 팬덤 문화가 부러웠다. 나름 큰(?) 맘을 먹고 1박 2일 일정으로 평창에 달려온 내가 무색해질 만큼 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중국 선수들은 좋겠다. 탁구 칠 맛 나겠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곤 상상했다. 젊은 여성팬들의 환호를 받는 우리나라 선수들을. 장우진과 안재현, 임종훈을 에워싼 팬들의 모습을. 상상만으로도 흐뭇한 광경을.
“파이팅”이라는 한국말보다 “짜요”라는 응원구호가 더 많이 들리는 평창돔 체육관.
여기 평창 맞나요?
분명 한국 땅인데.
분명 홈그라운드인데.
우리나라 선수들이 중국에 원정경기 온 것 같은 이 분위기는 뭐지?
평창이 아니라 중국에 온 줄?
탁구장 동료에게 물었었다.
“평창 아시아 선수권 대회 보러 갑니다.
같이 갈까요?”
그의 대답이 귀에 맴돈다.
“아직 거기 갈 정도는 아니에요.”
뭐가 아직 아니라는 거지?
선수로 출전하라는 것도 아닌데.
그저 축구팬이 축구 보러 가듯
야구팬이 야구 보러 가듯
가자는 건데.
2024년 2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되는 세계 탁구선수권 대회가 부산에서 열린다. 40개국 2000명의 선수와 관계자들이 참가한다. 2024년은 우리나라에 탁구라는 운동이 들어온 지 10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아시아 탁구 선수권 대회 말고 세계 탁구 선수권 대회는 어떤 모습일까? 내년 2월 부산이 기대된다.